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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왱이 콩나물 국밥

7. 전주 이야기

by 김경희

전주가 여행자의 도시가 된 뒤, 기쁨과 불편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변화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주말에 타지에 다녀오려 고속버스 예매할 때면 관광철엔 빈자리 찾기 어려워졌고, 한때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들어가 식사하던 동네 식당이 이제는 긴 줄을 견뎌야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반가운 활기와 작은 불편이 뒤섞인 일상 속에서, 전주는 여전히 내 고향이지만 어쩐지 조금씩 다른 도시가 되어가는 듯하다.


지난 주말, 내 생일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다. 전날 느끼한 음식을 먹은 데다, 딸과 며느리가 임신 중이라 개운한 왱이 콩나물국밥이 유난히 당긴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주차장에 차 세우고 건물을 돌아 정문으로 향했다. 입구 앞에 긴 줄이 길게 뻗어 있었다. ‘이게 웬 난리람’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왱이집 콩나물국밥을 찾는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리도 긴 줄 끝에 섰다. 간판 위로 ‘당신의 맛’ 촬영지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던 왱이집이 갑자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니 실감 나지 않았다. 게다가 넷플릭스 글로벌 Top 1까지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더욱 놀라웠다.


아침 일찍 왱이집 앞을 지나면, 문이 열릴 때마다 뜨거운 김이 ‘훅’하고 밖으로 밀려 나왔다. 콩나물이 펄펄 끓는 냄새와 밥 냄새가 섞여 전주의 아침 향이 만들어졌다. 주방에서는 아낙네들이 쉴 새 없이 손을 놀리고, 커다란 솥에서는 펄펄 끓는 국물이 새벽의 찬 기운을 밀어내듯 뜨겁게 기지개를 켰다.


뚝배기에 담긴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목덜미를 타고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어 오징어채에서 우러난 감칠맛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다진 오징어 한 줌과 청양고추가 만난 구수함과 칼칼함. 그게 바로 왱이집 국밥이 오래 사랑받는 비밀이었다.


콩나물만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깊은 맛, 비린 맛없이 개운함을 남기는 묘한 풍미. 은은하면서도 칼칼하지만, 속은 맑게 씻겨 나가는 듯 편안한 맛이다. 그래서 숟가락을 멈출 사이가 없다. 땀이 송골송골 차올라도 식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왱이집 식당 내부는 언제나 소박했다. 시장통은 아니지만, 시장의 활기가 은근히 배어 있는 공간이었다. 낡은 나무 의자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고, 스테인리스로 바뀐 반찬 그릇들은 오래전 집밥의 식탁을 떠오르게 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익힌 열무김치와 깍두기, 새우젓 한 숟가락, 그리고 구운 김이 전부다. 예전엔 김을 넉넉히 내주곤 했지만, 손님이 늘어난 탓인지 요즘은 조그만 포장 김으로 대신한다. 그래도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담긴 수란 위에 살짝 부숴 올리기엔 충분하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왱이집의 공기마저 조금씩 달라졌다. 새벽 네다섯 시부터 줄이 생기고, 오전 열 시가 되면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 앞이 북적인다. 테이블 사이로 캐리어 끄는 여행객들의 모습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낯선 이들의 감탄사는 식당 천장에 오래 머물다가 뜨거운 김 속으로 스며들듯 뿌옇게 사라진다.


이런 변화가 낯설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하다. 전주의 허리를 지탱하던 작은 식당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다니. 전주 사람으로서는 괜스레 대견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 가끔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털썩 앉아 아무 말 없이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들이켜던 조용한 아침이 그립기도 하다.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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