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작가상

by 김경희

아끼는 후배가 초원 앱을 통해 동영상 카드를 보내왔다. 열어보니 은은한 찬송가 선율 위로 나를 향한 후배의 기도문이 정갈한 글씨체로 흐르고 있었다. 후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나니, 문득 항암 치료 중인 지인이 떠올랐다. 그분에게도 이런 위로의 기도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앱을 설치하고 ‘기도 편지 선물하기’를 누르니 상대방의 특징과 원하는 기도 제목을 키워드로 선택하라는 화면이 떴다. 그분을 떠올리며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랑스러운’, ‘정직하고 진실한’이라는 키워드를 골랐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마음의 평안’, ‘상처의 치유’를 기도 제목으로 선택했다.


빈 편지지 위에 기도문이 순식간에 생성되었다. 내가 직접 공들여 쓴 글이 아닌 AI가 조합해 낸 문장들이었다. 키워드에 맞춰 매끄럽게 완성된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의 글쓰기 무대는 두 존재가 공존할 것이다. 인간의 손끝에서 태어난 순수 창작과 알고리즘이 계산해 낸 문장이다. 이질적인 두 존재가 충돌하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을까?


AI가 문장을 만들어내는 속도는 인간을 압도한다. 하지만 참된 창작이란 속도가 아니라 의미의 경험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자세로 이 새로운 도구를 다뤄야 할까. 고민의 순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당혹스럽게 찾아왔다.


최근 문예지에 실을 원고들을 검토하다 보니 몇 개의 원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흐름과 문체를 띠고 있었다. 편집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할 생각도, 의논할 틈도 없었다. 그저 갑자기 터져버린 못물처럼 AI의 문장들이 버젓이 작가들의 원고가 되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존재인 우리는 앞으로 AI와의 공존을 거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창작의 불씨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지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기억과 상처... 사람의 내면에서 건져 올린 고유한 것들이 문장의 시작이어야 한다. AI는 창작을 대신하는 대리 작가가 아니라, 글쓴이의 사유를 명료하게 해주는 도구이어야 한다. 구조를 정리하거나 흐름을 가다듬는 작업에 기계의 힘을 빌리면 된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AI가 만들어낸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계의 문장은 정교할지언정 그 속에는 삶의 굴곡이 만든 감정이 없다. 글쓴이는 기계가 만든 문장에 자신의 감정을 다시 입혀야 한다. AI가 쓴 글을 내가 쓴 글로 오독하지 않는 분별력이야 말로 창작자의 윤리가 될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위험한 것은, AI의 문장을 자신의 문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일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더없이 명확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사유이고 어디부터가 기계의 조력인지. 자기 문장의 출처를 자각해야 한다.


글 쓰는 이들은 AI를 통해 오히려 더 ‘자기다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AI를 쓰는 시대라서 순수 창작이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를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AI와 순수 창작이 서로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어울릴 수 있다면 적이 아닌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계는 언어를 다루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이런 차이를 잊지 않는 한 AI는 작가의 자리를 빼앗는 도구가 아니라 작가들이 더 인간적인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AI의 시대에 글 쓰는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선 더 인간다운 문장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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