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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해 Sep 07. 2020

김규진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그녀의 사랑과 용기와 희망으로 변화 될 세상.  


 나는 퀴어를 팬픽을 통해 알게 되었다. 팬픽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끼리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연애, 거기에는 내 질투의 대상이 없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팬픽 속에서 그들은 아이돌, 마피아, 고등학생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나는 그들을 상상하며 소설에 감정이입을 하기 쉬웠다. 나는 팬픽을 읽으며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환상이 생겼고, 그들을 이해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것은 퀴어 물이 아닌 BL 물이었고, 팬픽을 읽는다고 퀴어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내게 커밍아웃을 했다. 순간 나는 그냥 기뻤다. 그냥 게이 친구가 생겨서 특별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게 하는 이야기는 팬픽과는 달랐다. 그는 부모님과도 매일 싸워야 했고,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아우팅을 당해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는 말 같은 것으로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줄 방법을 알고 싶어졌다.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술자리에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친구는 기독교 모태 신앙이었다. 나는 앞으로의 술자리가 토론회로 변할 것을 예감했다. 나는 그의 질문에 계속 대답해야 했다. 그러면서 부담감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는 계속 동성애를 반대하겠지,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겠지. 겨우겨우 대답해나가면서도 나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동성애를 왜 이해시켜주어야 할까.

 “네가 모르겠으면 공부를 해야지. 그냥 교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반대하지 마. 그게 제일 안 좋은 태도 같아. 사실 나는 이걸 왜 이해시켜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거든.”


 나는 그때 그에게 몇 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라는 책을 추천하겠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작가 김규진은 최근 본 여성 중 가장 재밌고 유쾌한 능력자다. 책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유머’의 힘이 빛났다. 나는 동성애나 퀴어를 다룰 때 쓸데없이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유머러스한 태도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다. 동성애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이니까. 그녀의 유머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길 수 있었는데 그건 이야기가 가볍다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읽힌다는 거였다. 그녀는 내게 이해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K-장녀에 남들 취업 준비할 때 함께 취업 준비를 하여 회사원이 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에서 언니와의 결혼식을 이뤄냈고,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미국까지 갔다. 또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아냈다. 그녀의 이 파격적인 행보는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그리고 그녀의 당당함.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고 그렇기에 당당하다. 나는 그런 면이 읽는 내내 부러웠다.     

 그녀는 일도 사랑도 척척 해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두 분야에 있어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녀 스스로 칭한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라는 명칭에서는 마케터로서의 역량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단어는 사람의 이목을 끈다. 또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기획력, 실행력을 동원한다. 상대에게 확신을 보여주고,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미래를 구성한다. 이런 능수능란한 태도를 보며 그녀가 좋은 환경에 자라 구김살 없이 자라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은 아닐까 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좋은 사람만을 만나는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 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안 되겠지. 함께하다 보면 분명 힘든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마일리지 합산이 안 된다면 내가 언니 카드로 적립을 할게.

신혼부부 대출이 안 되지만 1주택 세금으로 2주택을 보유할 수 있어.

수술 시 동의를 못 하게 하면 아는 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가자.

사망 시 상속 순위가 밀린다면 미리 공동 명의로 법안을 설립할게.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지금 서로가 골라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축하해주는 하객들 앞에 서 있어.

결혼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의 결혼은 행복할 거야.

나랑 즐겁게 살아보자.

사랑해.     

2019년 11월 10일

신부 김규진”     

김규진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134쪽     


 그녀의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와 고난이 놓여있었다. 그녀가 내놓은 해답과 앞으로의 해결 방안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치열한 고민이 있었는지 용기가 필요했는지 느껴졌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눈물이 났다. 내겐 이런 용기를 요구하는 사랑도, 이런 어려운 사랑도 없었다. 

 그녀가 매사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 또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녀는 매 순간 이유와 늘어놓아야 했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감당해야 했다. 

 내 사랑을 누군가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니. 그 누구도 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없는데 어떻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를 100가지 나열하고, 누군가 그것을 읽는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녀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답답할지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아주 조금.  

   


 어릴 적 좋아했던 <빨간 망토 차차>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은 변신하기 위해 친구들과 이 세 단어를 말한다.

 “사랑, 용기, 희망”

 우리는 쉽게 그 단어를 말하고 써왔지만, 사실은 너무나 커다랗고 어려운 단어들이다. 하지만 김규진이 갖고 있는 사랑,용기, 희망. 그녀의 사랑, 용기, 희망은 분명 누군가를 변화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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