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서울역사 안에 있는 <문화역서울 284>를 찾았다. 과거 서울역사 안에 있던 군사시설(주한 미군의 철도화물 수송 사무소 및 여행장병 안내소, RTO)을 개조한 공연장이다. 국악 밴드 <The Tune>의 공연 관람을 위해 걸음을 했다. 이 밴드와는 지난 6월에 있었던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연극 공연 때 처음 만났다. 소설가 김말봉의 1930년대 인기 소설을 무대화한 공연에서 <The Tune>은 1930년대 느낌을 살리는 신민요 중심의 유행가를 연주, 노래했었다. 이 공연에서 <The Tune>은 연극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멋지게 역할을 해냈다.
연극무대를 돋보이게 하던 역할을 넘어 29일에는 스스로 발광하는 공연을 폈다. 창작 국악 공연집단이라 자칭하며 자부하는 <The Tune>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과거 갑남을녀들이 접했던 무속음악, 노동요, 길놀이 등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연주, 노래했다. 그래서 과거에의 탐구, 갑남을녀들의 과거 생활이 공연의 금맥이 되어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갑남을녀의 유행 노래 중에서도 1930년대에 유행했던 신민요를 다시 갈고닦아 편곡, 연주하였다.
8월 25일, 26일 같은 공간에서 재공연을 벌인다. 사실 <신민요>라는 장르는 1930년대 꽃을 피웠지만 수명을 다한 대중장르다. 김세레나 가수 이후에 그를 자신의 주 장르로 삼고 활동하는 이도 없다. 1970년대까지 약 40여 년 명맥을 이어왔지만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는 기억 속 장르다. 어쩌면 아주 고령자이거나 연구자가 아니면 기억하지도 못할 장르를 <The Tune>이 새롭게 꺼내왔다. 다시 한번 그 존재를 이야기하고 기억해 두자는 의미도 있겠고, 잊힌 것들도 때론 다른 벡터와 만나 전혀 새로운 것의 밑바탕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신민요>라는 늙은 노래는 때로는 일제 프로파간다의 한 방편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 없는’ 잡종으로 취급받아 왔다. 일본 군국주의 정부가 지방의 노래 정책을 폈던 적이 있었는데 조선도 한 지방으로 간주하고 그 지방에 맞는 노래를 개발해 내야 한다는 정책적 결정의 산물로 신민요가 등장했다는 주장까지도 있다. 혹은 상업주의에 일찍 눈 뜬 <오케 레코드>의 능숙한 수완의 산물인 것처럼도 다루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유행하니 조선에서도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즉흥 산물이었다는 주장조차도 있다 (이 주장은 1930년대 당시 레코드 문예부장들 간의 좌담회에 등장한다). 그런 의도와 속셈에서 태어났어도 그 숨결은 오늘날 우리 곁 어딘가에 살짝 걸쳐져 있지 않을까. <The Tune>이 그렇게 크게 두들기고 불어대고, 훑어나가는 모습에는 100여 년 전과 지금을 이어보려는 작은 욕심도 담겨 있다.
전통악기와 신시사이저 그리고 퍼큐선 등이 함께 하는 5인조 밴드는 8월 25, 26일 같은 장소에서 한 번 더 관객을 만난다. 1925년 준공된 근대식 건물의 상징인 과거 <경성역> 한편에서 늙은 노래를 새롭게 고쳐서 연주하고 부를 예정이다. 약간은 억울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를 그 옛 늙은 노래가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는지 감상할 발걸음을 해보길 여러 친구들에 권한다. 심지어는 무료 공연이니 예약하는 수고만 하시라 (02-580-3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