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5
얼마 전에 이전에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다른 팀을 맡고 있었던 팀장님과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던 스타트업이었지만, 직책은 존재해서 저 역시 콘텐츠 팀의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팀장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유정 님 덕분에 팀장이라는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고마워요. 유정팀 팀원이 유정 님이 팀장으로 일하는 동안이 회사 생활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갑작스러운 극찬에 저는 몸 둘 바 몰랐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그 말에서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팀장이 된 후 10년이 지났지만, 좋은 팀장이 이제야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나쁜 팀장은 피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팀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행동한 것뿐이었어요.”
스타트업의 경우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아 직급은 없지만,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 존재하곤 합니다. 팀장이나 리드, 헤드 등의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등을 열고 진행할 때 기본 직책인 구성원들보다는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죠. 물론 수평적으로 의견을 교환하지만, 의사결정은 수직적으로 이루어지죠. 수평적인 조직 구조와 수직적인 의사결정이 대치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많지만, 사실 그것은 회사의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위해 종종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존의 기업처럼 제왕적인 결정 권한을 가졌다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론을 내려주는 역할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이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많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의견을 편하게 내놓는다고 해서 팀장의 가이드나 결정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장은 수평적으로 의견을 서로 나누지만 더 나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기업에서도 팀장의 역할을 수행해 본 저는 언제나 좋은 팀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인품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고, 조직에서 중간 역할을 잘 수행하는 팀장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을 되도록 최대한 수렴하고, 업무적인 터치도 잘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죠.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정작 필요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물쭈물하는 경우가 있었고, 제 상사는 물론 팀원들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팀장이 되고 말았죠. 아마도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좋은 팀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탑다운 방식으로만 흘러가던 일의 방식 속에서 좋은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정말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하달하는 역할 정도였으니까요.
진정으로 팀장에 대해, 리더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것은 스타트업에 와서였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업무를 진행해야 하지만, 가이드와 피드백을 제시해야 하고 책임을 저야 하는 등 이전보다 복잡한 롤이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만 어려워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팀장의 롤에 대해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다들 팀장의 역할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위안으로 삼기도 했죠.
제 경험상 스타트업에서 좋은 팀장이란, 팀원의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만족감을 우선시 여기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팀원은 저절로 동기부여가 되어 훨씬 더 좋은 퍼포먼스를 냅니다. 리더가 가져야 할 최선의 덕목은 ‘무조건’ 구성원의 퍼포먼스를 최대치로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팀원의 퍼포먼스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보완해 줘야 합니다. 항상 예의주시하면서 구성원이 어떤 피드백을 원하는지 살펴야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성장을 위해서 이야기를 나눌 타이밍을 놓쳐서도 안 되죠. 팀장이야말로 스타트업에서 제일 많이 쓰는 용어인 ‘린’(빠르고 기민하게)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팀장뿐 아니라 리더의 롤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본 리더들의 일부는 장점은 당연시 여기고 단점을 약점으로 공격했습니다. 회사 내에서 동기부여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퍼포먼스를 잘 내는 것 이상으로 과도한 회사의 충성을 요구하기도 했죠. 밀도 있게 일하는 것 말고 오랫동안 사무실을 지키는 것이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리더도 있었습니다. 그런 리더들과 일할 때의 공통점은 무슨 짓을 해도 제가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리더가 된다면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 주자.’
팀장을 하면 할수록, 엉터리 리더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도 즐겁고, 팀원도 즐겁게 일하자’라는 생각은 점점 짙어졌습니다. 정확한 피드백을 주고 상황에 맞게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함께 즐겁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루의 반 이상을 함께 해야 하는 회사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인생의 반이 즐겁지 못한 것이죠. 아니, 인생의 반이나 괴로운 것이죠.
어쩌면 팀원들의 즐거움을 생각한다는 것은 저 좋자는 이기심 일수도,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 인생도, 팀원들의 인생도 저와 함께 일하면서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해진다면 제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상사 욕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그 시간을 더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회사원은 항상 가슴속에 사표를 담아 둔다고 합니다. 회사를 좋아하기는 정말 힘들죠. 그래도 내 역할의 권한과 책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도록, 나다운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조금 더 배려하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 행복한 회사 생활을 선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행복한 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