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정 Jul 23. 2024

안 해보고 해 본 것처럼 쓰면 안 되잖아요

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4

여러분, 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요?  저도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정말 매일 생각합니다. 좋은 콘텐츠는 무엇인지 말이죠. 아무래도 오랫동안 여행업에 속한 기자로 글을 써오다 보니 경험을 전달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여행사, 관광청이나 항공사들과 협업하는 구조로 여행지에 가보고 쓰는 여행기가 중심이 되어 콘텐츠를 써 왔지요. 그래서일까요,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추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심한 경험주의자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 써오다 보니, 아무래도 경험하지 않은 걸 잘 믿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고, 직접 경험해 봐야만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남들을 못 믿는 건 아닌데, 블로그 리뷰 몇 개로는 진짜라고 믿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고치려고 하는데도, 참 쉽지가 않네요.


처음 들어간 스타트업은 여행 관련 스타트업이었는데, 대부분의 콘텐츠를 인터넷 서칭만으로 쓰는 회사였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해외 콘텐츠 제작을 멈추고 국내 콘텐츠만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모든 콘텐츠 에디터가 블로그 리뷰나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해 콘텐츠를 생산했습니다. 종종 그 지역에 관한 전문가가 주는 콘텐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에디터들이 경험하지 않은 걸 썼습니다. 추천 맛집도, 추천 관광지도 실제로 가보고 쓴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은 별점과 리뷰 등을 종합해 쓰는 경우가 많았죠.


처음엔 가보지 않은 여행기를 쓴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꼈습니다. 인터넷 지도에서 별점이 높다고, 예쁜 사진이 늘어서 있다고 구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곳일까요. 그런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간의 분위기, 직원의 친절함 등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인터넷 서칭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무리스럽지만 국내 도시 한 곳을  주말마다 찾아다녔어요. 제가 찾아간 곳이 좋은 곳이었을 경우 정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막상 가보면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으로 유명한 카페가 웨이팅도 너무 길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 외에는 볼 것도 없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입장에서 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콘텐츠에 진정성이 없으면 고객에게 좋은 콘텐츠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요. 특히 여행에서는요.


좋은 여행 콘텐츠는 좋다고만 할 게 아니라 불편하고, 좋지 않은 부분까지도 언급해 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행은 보통 일상에서 떠나 행복하려고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상과는 달리 오직 행복하기 위해서 가니까,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게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겉 포장만 화려한 겉모습에 속아 실망하는 일은 일상에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지인들에게 여행 관련 상담을 해줄 때 더 신중해집니다. 경험해 보고 좋았던 곳만, 정말 믿을 수 있는 곳만 추천하게 되더라고요. 한번 가보고 ‘여기가 최고다', ‘너무 좋다'라고 추천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제 경험과 감정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 보편화해서 전달하기가 불편하더라고요. 추천하기에 앞서, ‘내 개인적인 생각은’, ‘내 개인적인 감정은’이라고 붙이며 자꾸 자기 방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콘텐츠 제작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회사 생활에서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평가하는 관리자의 입장이 되다 보니 어떤 구성원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내 경험 안에서는, 내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서는 그 사람이 좋았지만, 제 상사의 평가는 다른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 안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에 점점 자신이 없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좋았다고 해서 모두가 좋을 수 없고, 내가 싫었다고 해서 모두가 싫을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저도 2, 30대에는 제가 경험한 것이 전부 인양 마구마구 추천하고 비난했거든요. 조금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쉽게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았던 공간을, 사람을 새롭게 소개한다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입니다. 좋은 공간과 사람을 새롭게 만나는 일도 그렇고요.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을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중요한 일이니까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또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