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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정 Jul 11. 2024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

40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3

- 새벽 3시에 보내는 카톡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회사.

- 매일 새로운 기사에 대한 발제를 출근 전과 퇴근 후에 해야 하는 회사.

- 점심식사에서 소주 3병 이상을 먹고도 업무를 해야 하는 회사.


여러분, 혹시 어떤 회사가 이런 회사인지 아실까요? 기사라는 힌트에 이미 정답을 알고 계시겠지만요. 네, 맞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다니던 언론사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모든 언론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겪었던 언론사는 그랬습니다. 저는 1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스타트업으로 전직한 사람입니다. 생각보다 홍보 분야가 아닌한 기자가 스타트업으로 전직한 경우를 생각보다 드뭅니다. 저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분야로 전직한 케이스기 때문에 흔한 경우는 아닐 거라 예상해 봅니다.


상명하복의 조직구조가 일상이고,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인 언론사를 다니다 보니 그것이 회사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저녁에 잡은 친구들과의 약속도 하늘 같은 부장의 부름에 깨기 일쑤였죠. 그럴 때마다 당장 회사로 달려가는, 노트북을 켜서 업무를 보는 제 모습을 친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엔 약속이 있으니 갈 수 없다고 말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일을 시켜?”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오히려 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친구들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첫 사회생활을 작은 언론사의 기자로 시작한 저로서는 일반 회사의 시스템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작은 언론사과 큰 언론사를 오가며 기자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정말 몰랐습니다. 제 생활이 얼마나 그들과 다른 것인지요. 어쩌면 몰라서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회사 생활엔 각각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자라는 일은 최소한 제가 하는 동안, 제가 다닌 언론사는 비교적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쓴 기사에 반응해 주는 독자가 있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는 일은 제게 너무 기쁜 일이었습니다. [단독]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제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지낸 언론사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부장이 저를 스타트업으로 보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해줬거든요. 회사를 다니는 분이시라면 상사가 괴롭히면 얼마나 회사를 다니기 싫어지는지 아실 겁니다. 일이 힘든 건 버텨도 사람이 힘든건 못 버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겠지요.


한 분야의 전문 기자로 활동하는 제게 다른 분야의 기사를 작성하게 시키는 것은 물론, 새벽에 카톡을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근하자마자 1시간씩 옆에 세워두고 욕을 했습니다. 인간관계는 양쪽 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제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부장은 저를 그만두게 하는 게 목적 같았습니다. 저는 결국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론사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기자 생활 자체에 회의감이 느껴졌어요. ‘인생은 짧고 행복하기는 쉽지 않은데, 24시간 동안 나를 갈아 넣는 이 직업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일단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를 그만뒀습니다.


구직사이트에서 구직 정보를 언론사에서 일반 회사로 바꾸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더라고요. 서로 뽐내듯 회사의 복지와 조직 문화에 대해서 자랑하는 문구가 가득 담긴 채용공고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칼퇴근은 기본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개인의 성장을 중요시 여기며, 수평적인 조직 구조와 매력적인 복지가 있다는 스타트업 세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런 회사가 실제로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마치 유토피아 같은 회사 생활이라고 느껴졌거든요.


제가 일해왔던 여행 분야의 스타트업이 마침 구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고 부를까요? 여행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햇병아리인 저는 운명처럼 여행 스타트업으로 가게 됩니다.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스타트업인 만큼 패기 넘치게 들어갔던 스타트업에서 새롭게 접하는 문화는 정말 낯설었습니다. 지난 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낯선 용어들이 난무하는 판교 사투리에 영어 이름을 쓰며 서로 의견을 구하는 모습들은 마치 제가 딴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죠. 이건 회사를 옮긴게 아니라 살고 있던 세상을 옮긴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회사 생활은 나의 일상과 동일하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내가 무슨 회사를 다니고 어떤 일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인지가 곧 일상이니까요. 회사 생활이 괴롭고 무너지면, 내 일상 역시 같이 괴롭고 무너집니다. 언론사는 악이고, 스타트업은 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스타트업을 다니면서도 힘들고 괴로운 순간 역시 있었습니다. 회사를 선택하고 일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곧 나의 일상을, 행복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제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직장인은 사표를 늘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고 합니다. 직장생활이 그만큼 괴롭고 힘들다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일상이 무너지면서까지 다녀야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방식이 맞고 옳고 이게 다 인것도 아니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 말이 꼭 저는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로 들립니다일상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랑새는 늘 곁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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