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이 아니고 허준입니다.
2014년 초등임용고사 국어 문항 주관식 11번의 정답은 허균이었다. 홍길동전의 저자는 누구인가 라는 다소 암기형 문제의 정답인 허균을 알지 못했던 수험생들에 의해 정답은 참 다양하게 변주 되었다. 허난설헌의 남동생이라는 힌트가 있었지만, 누군가는 이제는 돌아가신 가족오락관 진행자 허참을, 누군가는 동의보감을 썼던 허준으로 적었다. 당황한 누군가는 그저 허씨라고 적었던가. 오후 5시,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복도에서 에이씨, 허균이잖아 누군가 성가시게 조근거렸을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한 문제는 맞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서 합격할 수도 있겠다라는 안도감으로,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갑자기 허준이라는 이름이 소환된것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때문이었다. 이름의 일부가 같을 뿐이었는데, 문득 20년 넘게 잊고 있었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1학년 3반 동문이었다. 물론 이름만 비슷할 뿐이었다. 생김새도, 나이도, 고향도, 출신학교도 필즈상 수상자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떠올랐던것은, 단지 '허준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2000년, 밀레니엄이라 불렀던 그 3월의 어느날, 복도에서 사뿐히 서 있던 그를 기억한다.
남녀공학의 설렘도 잠시, 친구 사귀기에 심드렁했던 나는 그저 가방만 매고 왔다갔다 하는 생활에 벌써 지겨워져 있었다. 이렇게 3년을 보내야 하는건가. 대학은 꼭 가야된다고 했는데, 내가 뭘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에 가기위해 매일 등산을 하는 기분이란. 영 설레지 않았다. 이럴거였으면 시내 여고로 진학할껄, 그러면 내신도 챙기고 좋았을텐데. 단지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한 이 학교를 가기위해 3년 등산하면 체력이라도 좋아질까 하는 심심한 생각과 함께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밴드부의 노래를 흥얼거릴뿐이었다.
허준은 늘 보이지 않는 운동장 방향으로, 그저 창밖을 보려고 듯, 반쯤 고개를 빼고, 복도에 서 있었다. 한 사이즈는 커보이는 교복바지에 묻힌 실내화, 안그래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뽀얀 얼굴이 앳되어 보였는데, 키까지 150이 채 되지 않으니, 마치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고만고만했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유독 작은 그는 조금 특별해 보였던것은 매일 아침 일등으로 등교한다는 사실을 들은 후 였다. 시내 여중 삼거리 이층집에 세들어 산다고 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을 알게된 것은, 어느날 집에 일찍 귀가한 아빠 덕분이었다. 너희반에 혹시 허준이라고 있지 않니? 하는 물음에 굳이 몰라도 되는 그의 사정을 알게되었다. 왜 그러는데 라고 퉁명스런 대답이 시작이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와 살고 있다는 그 아이. 엄마가 암이었다나 뭐래나. 40도 안된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어버린 엄마는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기에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그저 나와 아무애기나 해보고 싶으셨던 걸까. 그저 그 말을 끝으로 은근슬쩍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엄마가 없으니 잘해주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같은 반이니 인사정도는 하고 지내라는 뜻이었을까. 아빠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채, 사는게 귀찮아서 그랬던 나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부터 허준은 내 머릿속에 작은 점으로 각인되었다. 이 점이 점점 커지는데는 그저 며칠이 걸렸다. 일주일인가 열흘인가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복도에서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남자애들 사이에 굳이 그 아이를 찾으려고 하진 않았다지만, 언제나 소란스런 복도에 그가 없었다는 사실이 왜 중요했을까. 빈자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뿐히 서있던 그 자리에는 그저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의 무심함이 지나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