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을 책으로 꾸며봤을 때 일어나는 일
노선생 교실은 왜 이렇게 허전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학기 초 층마다 교실을 둘러보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어요. 뭔가 알록달록하게 꾸며놔야 하는데, 책을 놓기 위한 비워놨더니 어색하셨나 봐요.
여러분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나요? 취향이란 말에는 한 사람의 관심사가 고스란히 나타나요. 교사의 취향은 교실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학교 안에서 다 같은 교사로 보이지만 교실 속에서 저마다의 색깔이 은근히 드러나요. 그래서 학기 초 다른 교실에 구경 가면 교실 환경만 보고도 담임교사의 취향을 알아맞힐 수 있답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선생님 교실에서는 수시로 노랫소리가 들리고, 미술에 취미가 있는 선생님 반에 가면 글씨체부터가 달라요. 같은 미술 활동을 해도 뭔가 선생님만의 감각이 느껴진달까요. 그런 경험 한 두 번쯤 있으시죠?
“선생님 교실에 있는 학급 문고는 다 사신 건가요?” 학기 초 저희 반 교실을 구경하러 오셨던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어요. 딱 봐도 상태가 너무 좋은 새 책들이 전면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보신 거죠. 일단은 제 전략이 성공했군요. 누군가가 제가 있는 교실에 들어와서 책을 먼저 느꼈다니 굉장히 뿌듯했어요. 저는 평소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던 사람이라 집에도 책이 10권 내외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학교에 있는 책들은 어디서 난 걸까요? 놀랍게도 이 책들은 전부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한 것입니다.
매년 2월이 되면 빈 교실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해요. 매년 하게 되는 반복적인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교실은 아이들이 집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니 굉장히 중요해요. 어떻게 꾸며놓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은 달라져요. 한 번은 학기 중에 환경 구성을 바꾸려고 작업 중이었어요. 다 떼고 비어있는 부분을 보고 아이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선생님 너무 썰렁해요. 추워 보여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밤늦게까지 완성해서 조금은 따뜻한 교실을 만들었어요.
정말 신기하죠? 그저 평범한 교실 환경에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제가 있는 교실은 매년 저의 관심사에 따라 환경 구성이 조금씩 달라져요.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어요. 매년 책이 환경 구성의 중심에 있다는 거예요. 교실 앞 뒤를 둘러봐도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서 있으니 가끔은 여기가 교실인지 도서실인지 헷갈릴 때도 있답니다. 그만큼 책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그렇다고 책만 빽빽이 꽂혀있는 모범생의 책장은 아니고 뭔가 호기심이 생기는 책놀이터 콘셉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책도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퀴즈도 풀어보고, 글씨도 써보고 등등 책으로 할 수 있는 놀이는 굉장히 많거든요. 저는 교실 안이 책으로 둘러싸여 아이들이 책을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보는 친구랑 이야기하고 놀이하듯 아이들이 책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뿌듯하지 않나요.
초등학교 교실을 둘러보면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많아요. 교실 앞 칠판 양 옆과 교실 뒤 솜씨 자랑 코너가 있어요. 그리고 교실 옆 복도 쪽으로 각종 교구나 학급 문고를 넣을 수 있는 선반이 있어요. 아이들이 제일 많이 보는 곳은 아무래도 칠판 옆 공간이지요. 저는 한쪽 공간은 시간표나 주간 학습, 급식표 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붙여놔요. 아이들은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인지 보려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러 나온답니다. 그만큼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요. 그러고 나서 교사 뒤 공간을 제 맘대로 활용해요. 이때 책을 활용해요. 도서 표지를 칼라로 인쇄해서 붙여 놓는 것이지요. 책이 너무 많으면 아이들이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5권 내외가 적당한 것 같아요. 아이들은 매일 보는 앞 판에 동화책이 있으니 ‘저걸 왜 붙여놨을까’ 궁금해해요. 아직 읽고 싶지 않고, 책 읽기를 싫어할 수도 있어요. 다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책을 좋아하나 보다. 읽고 나면 상품이라도 주시려나’ 하고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답니다. ‘반드시 내가 저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만 책과 가까이 있다는 친밀감과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저 책을 볼 수 있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은 덤이고요.
어떤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을까 매번 고민해요. 기본적으로 교과 관련 도서와 함께 교사 추천 도서를 정해요. 교실에는 총 20권 내외의 책이 있어요. 대부분의 책은 학교 도서실에서 교사 명의로 대출한 거예요. 학생들의 대출 기한은 짧지만, 교사는 30일이라 굉장히 여유로워요. 대출 권수도 넉넉해도 교실 문고로 비치해도 손색이 없어요. 이 책들을 교실 옆 선반에 책 표지가 보이게 세워 둬요. 마치 전면 책장처럼요. 눈에 책 표지가 보이니 언제라도 손에 잡아서 읽기 쉬워요. 도서실에는 수많은 책이 있지만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과정도 훈련이 필요해요. 다양한 책을 읽어보고 추리고, 자신이 원하는 독서법과 독서 스타일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교실 문고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식으로 20-30권의 교실 문고는 한 달을 주기로 교체해요. 적어도 한 달에 20권은 읽으면 좋겠다는 제 의도가 담겨있어요.
교실 뒤 벽 공간은 아이들의 작품으로 매번 채우는 경우가 많아요. 굉장히 중요하죠.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도 보고 다른 친구의 작품도 보면서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요. 누구나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배워요. 아이들 작품 옆에는 아이들의 추천 도서가 있어요. 누군가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공개적으로 추천한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친구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추천사와 함께 직접 디자인한 책 표지도 전시한답니다. 교사 추천 도서는 아무래도 모범적인 내용이 있어 아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어요. 의외로 친구 추천 도서를 읽는 경우가 꽤 있어요. 아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점이 통했다고 할까요. 아이들은 서로의 책을 서로 추천받아보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도장도 받아요. 일석이조예요. 제가 원하는 교실 풍경의 한 모습이랍니다.
아무래도 교실환경이다 보니 단정하고 깔끔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덩그러니 책 표지만 붙이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재미가 없어서 안 찾겠죠. 저는 책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로 표현하여 책 표지를 기둥으로 쓰고, 한줄평, 기억나는 구절을 가지로 엮을 때도 있어요. 때로는 책 표지에 그 책을 읽은 아이의 얼굴을 넣어 추천사를 붙이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아이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같은 책을 읽은 친구가 여럿이라면 책 표지 뒤에 한 장을 덧붙여서 책을 읽은 아이들의 누적 감상평을 써놓도록 해요. 자신이 읽은 책이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읽었나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몇 학년을 맡느냐에 따라 꾸미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어요. 매년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조금씩 변형하다 보면 어울리는 것을 찾게 돼요. 쓰면 쓸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서 굉장히 재밌어요. 조금 지저분하면 어떤가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활동하고 그 기록으로 환경을 구성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어요.
교실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교사도 하루 종일 지내는 공간이에요. 가능하면 특색 없는 교실보다는 교사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써 환경 구성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만약 지금껏 취향 없이 무난한 환경 구성으로 지내왔다면 한 번쯤은 교사 자신을 위해서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가볍게 시작한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제일 쉬운 길이거든요. 혹시 아나요. 평소 알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는지. 지나가는 누군가가 교실만 보고도 담임교사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보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