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도가 없었어
나는 1996년에 결혼을 하고 양재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어. 내 집은 아니었고, 대출을 낀 전세였어. 형편이 안 좋았지. 전셋집이니 2년 있다가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당시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그 동네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어. 그러던 와중에, 네 아빠가 회사 사람들로부터 수원 근처에 영통이라는 신도시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온 거야. 회사 근처에 큰 도시가 생기는데 깨끗하고 괜찮다더라고. 그리로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난 처음에 싫다고 했어. 수원이 웬 말이야. 옛날에 아빠 친구 중에 수원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촌사람 취급했었게. “어휴, 수원이란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 이러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만 툭툭,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게 싫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똥 같은 자존심이었나 싶지만, 젊을 땐 그랬어.
그렇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어. 그때 내가 가진 1억으로는 서울에서 전셋집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영통에서는 20평대 아파트에서, 번듯한 내 집을 가지고 살 수 있었지. 그렇게 내려가게 된 거야. 처음엔 조금만 살다가 올라오려 고 했어. 그런데 할머니도 날 도와주러 경기도로 내려오시고, 직장도 경기도에서 잡게 되면서 어쩌다 보니 서울을 영영 떠나게 된 거야.
그리운 서울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서울이 그리워. 이젠 서울에서 산 세월만큼이나 경기도에서도 오래 살았는데도, 이상하게 내가 경기도 사람이라는 생각은 잘 안 들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불만은 없는데, 그래도 서울이 내 집이고 지금 사는 곳은 잠시 머무르는 곳처럼 느껴져. 서울을 생각하면 아련해. 서울은 내 고향이야. 부모 같은 곳이고, 가고 싶은 곳이고. 나한테 서울은 그래.
땅을 밟고 살고 싶어
물론 지금은 옛날처럼 꼭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서는 먼 시골에서 사는 걸 상상해본 적도 있어. 그렇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곳에 살아야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곳에서 땅을 밟고 살고 싶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는데, 이젠 높은 곳에 서 사는 게 힘들게 느껴져. 앞으로는 낮은 곳에서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