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경, 싯왱산(Sit Weng San), 을지예술공간
을지로를 거닐다 보면 거리를 구성하는 이들의 극명한 나이 차를 느끼게 된다. 보통은 둘로 나뉘는데, 공구거리의 영세 상인(보통 60대 이상)과 ‘힙지로’를 찾은 20대 청년들이다. 이는 2010년대 후반, 을지로 술집 ‘만선호프’와 ‘OB베어’를 중심으로 노가리 골목이 사랑받기 시작하며 거리에 젊음이 이식된 이후 나타나는 풍경이다. 둘 중 젊은 쪽에 가까운 필자 또한 낮에는 전시 공간을, 밤에는 ‘신도시’를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이 거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힙’ 말고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있다. 젊음을 수혈하고 거리를 활기차게 만든 주역이자 노가리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던 OB베어는 지난 4월 새벽, 강제철거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에 의해 ‘백년가게’로 지정되었던 OB베어는 채 50년도 채우지 못하고 용역에 의하여 비참한 영업 중지를 맞게 되었다. 비단 노가리 골목뿐만이 아니다. 을지로3가역 근처는 모두 재개발 예정이다. 서울시는 ‘상생·순환형 도심재개발 모델’이라는 미명 하에 일대를 재건축할 계획안을 가결했다. ‘낙후된’ 도시 미관을 정돈하고 대체 영업장을 설치한 뒤에 세입자들을 다시 부르겠다는 이야기이다. OB베어가 건물주와 마찰을 빚기 시작한 시기도, 서울시가 전면적인 재개발을 허가한 시기도 2018년이다.
물론 을지로는 매우 낡고 노후한 곳이다. 골목이 많아 지도를 잘 읽는 이에게도 길 찾기가 여간 어려운 편이 아니다. 골목 어딘가에 있는 전시공간을 찾아가려면 지도에 찍힌 빨간 점, gps가 알려주는 나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해야한다. 그런 식으로 찾아간 곳이, 을지예술센터이다. 현재 최민경, 싯왱산(Sit Weng San)의 《영원히 늙지 않는》이 8월 12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크게 영상과 사진으로 구성된 두 작가의 공동 프로젝트 전시이다. 전시의 메인 작품이 되는 <영원한 젊음을 위한 매뉴얼>이라는 2채널 영상에서 한국의 30대 여성 예술가 최민경, 싱가포르의 40대 여성 예술가 싯왱산은 작품 제목 그대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매뉴얼을 주입받는다. 전시장을 채우는 남성의 목소리는 ‘1. 지워라, 2. 통제하라, 3. 식민화하라, 4. 위장하라’와 같은 방법들은 최대한 자세히, 예시를 들어가며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항노화를 위한 인간들의 갖은 노력, 즉, 미라클 모닝, 키토 식단과 같은 생활방식부터 인체 냉동보존까지 포괄하는 기술은 젊음과 항상성을 위한 인간들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젊음의 특성은 ‘매끄러움’이고, 젊음은 곧 ‘자유’이다. 남성의 목소리는 두 여성 작가에게 어려 보이는 화장법을 권하고, 뷰티 카메라 어플의 사용을 독려하며 작가들을 노화에서 구제하려 한다. ‘나이가 들며 깊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지 않나?’라는 두 작가의 의견은 가차 없이 묵살된다. 화면에서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인다는 작가의 얼굴은 못 볼 것을 본 듯 지워지며 남성의 목소리는 두 작가의 의견을 더욱 큰 목소리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저항은 따르는 법이다. 인간은 모두들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사실 그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다. 건너온 다리를 불태워라”. 젊음은 비단 인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상에는 서울과 싱가포르의 풍경이 펼쳐진다. 굽이진 을지로의 골목은 매뉴얼에 의해 배격당해야 할 노화된 얼굴의 주름처럼 보인다. 싱가포르에서는 고속도로를 내기 위하여 공동묘지를 파헤친다. 모두 매끄러움, 젊음을 위한 노력이다. 매뉴얼은 모든 낡은 것들을 삭제하되 노스탤지어를 위해 몇 가지를 남기는 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건물은 철거하되 일부 외벽은 새로운 건물에 이식하는 방법 말이다. 원본 없는 오래된 어떤 것, 그 외양만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도시는 가짜 노스탤지어를 만들어낸다. 낡은 것에 젊은 것을 주입하고, 식민화되고, 위장되는 도시는 허구이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서울은 점점 싱가포르를 닮아가게 된다.
두 작가는 결국 이 모든 매뉴얼에 “NO”라고 외친다. 최민경은 젊음과 매끄러움을 좋아하지만, 자신은 노화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싯왱산은 젊음이 정체성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젊음에 대한 욕망과 정체성을 분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NO라고 외치는 이들 앞, 영상 작품 중에 흘러나오던 노화 방지를 위한 매뉴얼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있던 필자가 있다. 물론, 직접 따라 해보고 싶어서 촬영한 것이다. 익선동을 좋아하는 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가짜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들어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OB베어와 을지로의 철거에 관해서 물어본다면, 그러한 방식에 반대한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서 방탄 커피, 항염증제를 챙겨 먹는 방식을 기록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영원히 늙지 않고 싶은지, 늙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