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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Feb 09. 2022

다시 제주로 내려가기 하루 전 날까지 월든을 읽은

 이상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기 위해 잠시 고향에.

 

 고향에 잠시 내려온 이상이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오래된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는 그곳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었다. 


 이 책은 그가 이미 오랜 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던 책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이틀 뒤 함께 간 제주 세화 해변의 한 자그마한 카페에서 읽었던 ' 법정이 사랑한 40여 권의 책'에 소개된 바 있던 책이었음을 그는 기억했다. 그는 그때 법정의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이며 일상적인 삶에 흠뻑 도치되어 가고 있었다. 법정 역시도 이 책을 읽고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빠른 시일 안에 이 책을 구해 반드시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고향 친구의 집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때 이상에게 한꺼번에 밀려든 발견의 기쁨이란, 마치 모래사장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 


 이상은 친구에게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기 전에 이 책을 꼭 다시 돌려줄 테니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어차피 보지도 않고,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책이라는 말을 하고는 이상에게 흔쾌히 그 책을 내어주었다. 


 그는 최근 반복된 밤샘 작업과 깊은 생각으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 리듬이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보통 새벽이 되거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잠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친구 집에서도 좀체 쉽게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잠이 든 친구의 집에서 밤새 <월든>을 읽기 시작했다. 


   


 월든.

 책의 처음 단락은 소로우가 말하는 숲 속의 경제학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는 여기서 인간이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어 산다면 생각만큼 많은 소비재가 필요치 않으며, 욕심을 조금만 더 버린다면 오히려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버드대학 출신이었던 소로우는 누구의 권유나 명령이 아닌 자발적 의사에 의해 약 2년간 월든 호수에 살면서 이러한 경제학을 몸소 깨닫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가끔 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월든의 숲 속 작은 통나무 집(이 통나무 집 역시 소로우 스스로가 긴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들었다)을 방문하는 친구들이 그의 유일한 인간적인 만남과 대화였다. 


 다음날, 이상은 새벽 첫 차를 타고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버스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심지어 예비군 훈련소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책을 탐독했다. 


 그러면서 점점 소로우가 말한 소위 '경제적 자유를 위한 삶이 아닌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발견이 모든 경제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선사한다'는 그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도로 다시 돌아가기 이틀 전부터 그는 행정적인 일들 몇 가지를 처리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에 구한 방비를 입금했고, 구청에 개명 처리 서류를 보내 두었으며, 꼭 봐야 할 사람들을 짧게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다음날 오후쯤이 되면 미정이 먼저 제주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그와 함께 살아갈 집 계약서를 작성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제주도로 돌아가기 마지막 날 밤까지의 상념들


  이상은 제주도로 다시 돌아가기 전날 밤, 이미 그녀의 얼굴을 일주일째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며칠 동안 계속 그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 작은 침대에서 함께 누워 책을 읽으며 포개진 부드러운 살결, 서로 사랑을 나눌 때마다 자신의 손을 꽉 마주 잡던 미정의 손바닥의 감촉, 한 번씩 까르르 웃을 때 보여준 환한 미소까지, 그녀의 모든 것이 이상의 우주 속에게 들어가려 하고 있었고, 그 역시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의 단절과 부재는 비록 고통스럽지만, 이것을 통해 소통과 서로의 존재의 소중함을 더욱더 깊이 깨닫게 된다. 그리운만큼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길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장미꽃의 가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지속되더라도 마침내 서로 해후邂逅하는 순간에 도달하게 되면 이것은 필시 기쁨을 넘어선 환희와 행복이 될 것이다. 


  이상은 훈련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 계속 이러한 생각을 하며 삼일 간의 무료한 훈련 시간을 견뎌냈다. 주로 이러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가 곧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 속 단어나 문장, 혹은 주제 같은 것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그녀와 나누었던 육체적 사랑의 열정과 환희, 곧 며칠 뒤면 다시 그녀를 만나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같은 상념들로 귀결되었다. 


 이상은 하루만 더 지나면 다시 그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함께 바다를 산책하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커피를 내려마시고, 함께 축구를 보고, 함께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섹스를 통해서는 서로의 육체를, 대화를 통해서는 서로의 영혼을 발견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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