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언제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을까 하고 놀랄 정도로 세월이 흘러가는 속도가 보이나 보다. 한참을 열을 올려 육아의 고충과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인간애와 행복을 쏟아내려 열심히 글을 써댔지만 정작 다시 일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하루하루의 삶의 비슷하게만 흘러간다고만 여겨 더 이상 순간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라는 자기 위안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위안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한번 날로 자라고 있는 이 거대한 세 아이들의 우주를 이 작은 철자와 문자 속에 담아 영원의 시간 속으로 봉인해 보려고 한다.)
올해 7살(2022년 기준으로)이 된 큰 딸은 옹알이도 늦었고, 말이 트인 것도 아주 느렸다. 거의 네 살 반 정도(12월생 에야 겨우 ‘엄마’, ‘아빠’를 말할 정도였으니 또래 중에서도 말이 늦어 걱정이 많았다. 나중에 나와 아내가 여러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본 결과 몇 가지 이유가 도출되었다.
1. 남편이란 아빠는 일 년 중 거의 1/3 정도 집에 없었다.
이에 엄마는 집 안에서 거의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고, 아이와 나누는 대화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 전부였다.
2. 주변에 다양한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큰 딸아이가 두 돌이 안 되는 시기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온전히 우리 부부 두 사람만이 아이를 키웠기에 다른 외부인과의 만남이나 접촉이 거의 없었다.
3.12월 생인 큰 딸은 선천적으로 모든 것이 느렸다. 키도 몸무게도 또래 아이들보다 작았고, 말도 느렸고, 발달도 느렸다.
물론 이 이유가 ‘반드시’라는 전제 조건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네 살 반이 된 여름에 내가 거의 집에 있었던 두세 달 동안 큰 딸아이는 말이 트였고,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입에서 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7살이 된 지금은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다른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도 전혀 뒤지는 구석은 없어졌을 정도로 말을 잘하게 되었다. 결국 한 두 해의 차이로 시작이 다를 뿐이었지 7살이 되니 언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비슷해지긴 했다.
이제 위에서 열거한 모든 조건을 전부 뒤집어 2년 반 동안 키워온 쌍둥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이 한 예시만 봐서도 알겠지만 쌍둥이의 말은 정말 빨리 트였다. 이렇게 말이 빨리 트인 것은 지난 3개월 전부터였다. 외부에서 들은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곧바로 내뱉거나 누나가 옆에서 재잘재잘거리는 모든 단어와 문장을 뜻도 모른 채 그냥 막 정확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놀라우면서도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새로운 단어만 내뱉다가 지난 3개월 전부터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부정어와 의문문까지 정확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오후 근무여서 점심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위해 옷을 입고 있으려니 쌍둥이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빠, 일 가?”
“어, 일하러 가야지. 왜?”
“오늘 일 안 가면 안 돼?”(둘이서 동시에)
“어…..?”
심히 적잖게 당황을 했었다. 그 이유인즉슨, 옆에서 항상 내게 그렇게 묻곤 했던 누나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인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더니 이제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내가 일하러 갈 때마다 저렇게 물어대니 심히 난처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네~
안 되네~
아빠. 나는 안 먹을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나는 이제부터 아이들과의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해 보려고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