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의 30년.
이상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들에 핀 잡초같은 강인하면서도 처절한 시간이라고 하겠다.
이상의 아버지는 집 안에서도 7남매의 막내둥이로 태어나 그 자신이 7살이 되었을 무렵, 목수였던 이상의 할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랑이라는 것은 부모의 따뜻한 두 날개 아래서 친절한 보살핌과 따뜻한 위로가 더해지면서 가슴 깊이 새기어 지는 것인데 이상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상 국민학교만 졸업한 채 친척집을 전전하며 힘겨운 청년기를 보내왔다.
이상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안해본 일이 없이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20대후반에 자리잡은 버스 기사를 직업으로 얻어 같은 버스의 안내양(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던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비슷한 연배이리라)과 11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상이 태어났다. 당시 이상의 어머니의 나이는 20살이었다. 그 후 2년 뒤에 이상의 동생이 태어났다.
이상의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지만 본인이 아버지로부터 혹은 어머니로부터 가족애라는 따뜻한 감정과 추억이라고 할 만한 일말의 기억도 물려 받은 적이 없었기에 이상의 아버지는 일 말고는 딱히 한 일이 별로 없었다.
이상이 7살이 되었을 무렵, 11살의 나이차가 가져온 가치관과 돈에 대한 씀씀이, 그리고 홀로 말성꾸러기 두 아들을 키우는데 지쳤던 이상의 어머니와 이상의 아버지는 매일 같이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이상의 어머니도 27살의 다른 친구들처럼 육아가 아닌 유흥과 여가를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지만 항상 두 아이가 걸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을 뿐이지, 이상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더 사랑했다.
'당신은 나이도 젊으니 새로 시작하게나. 아이들은 내가 키울테니.'
이 한 마디만을 남기고 이상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어린 시절의 이상의 기억 속에 엄마와 아빠의 다툼, 그리고 몇 달 간 친적집을 전전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 준 충격은 평생에 남았다.
8살부터 집 안에 어른이 없는 삶이 이상 앞에 펼쳐졌다. 언제나 집 안에는 동생과 이상 자신 둘 뿐이었다. 질서와 명령과 간섭과 친절과 보살핌이란 것은 없었다. 그저 밤이 깊어깊도록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이상은 울타리 없는 초원에 들풀처럼 자랐다. 무엇이든 먹고, 어디든 쏘다녔으며, 집 안에 따뜻한 온기로 맞아줄 사람이 없었으니 이 동네 저 동네를 누비며 누구나 만나고 놀았다.
치과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이상은 양치질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아 모든 유치를 스스로 고통 속에서 전부 뽑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몸에 큰 병이 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상의 아버지는 더 이상 용돈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상은 신문배달이나 식당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며 용돈을 스스로 벌었다.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다 죽어라 공부를 했다.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아야만 갈 수 있는 국립대에 입학을 한 이상은 대학 입학 후 얼마 뒤에 집을 나와 독립을 했다.
그 때부터 이상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며 독립된 삶을 억척같이 살아왔다.
그렇게 이상은 홀로 광야의 들풀처럼 내버려졌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겨내었다. 그는 삶에서 중요한 철학과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대학 시절의 고된 공부와 인간관계를 통해 확립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 바로 공부였다.
이상은 자신의 삶을 돌보기에도 힘에 부쳤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할 여력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집 안에 여성이라는 존재가 항상 부재했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호기심은 많았지만 정작 어떻게 대하고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잼병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동안 연애다운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별종이기도 했다.
그가 홀로 살아온 20대의 삶의 시간 중에 아버지로부터 그 어떤 재정적 도움과 위로의 말도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그냥 고아라 생각하며 어려운 삶을 살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