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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도 런던의 하이드 파크가 있는 이유

하이드파크에서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릿지까지

by 권즈

시드니 중심부의 하이드 파크.

호주의 어머니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호주와 뉴질랜드이다. 영국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자신들이 살던 영국 런던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도시의 길 이름이나 공원의 이름을 런던과 똑같이 지었다. 그래서 시드니의 중심부에도 영국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가 있었다. 뉴질랜드에 가도 영국 런던에 있는 이름을 딴 정원과 공원이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짙은 녹지의 잔디 위에 나는 전날 비행할 때부터 읽어왔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다 말고 잠시 덮어 두었다.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내가 인솔해 온 손님들이 묵을 호텔로 가서 먼저 체크인을 해두었고, 손님들은 현지 가이드에게 맡긴 채 오랜만에 혼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시드니의 스카이 라인을 뚫은 시드니 타워가 내 눈에 들어왔다.


짧게나마 혼자서 보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집에 있으면 아내와 돌잡이 아이에게, 이렇게 출장을 나오면 인솔해 온 사람들에게 붙잡혀 모든 시간을 다 빼앗겨 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짧게나마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잠시 숨을 돌려 쉴 수가 있다.


나는 여전히 젊다. 그러므로 자유와 자유분방함과 자연 속에서의 독서와 사색을 즐기기를 좋아한다. 예전에 읽어보았던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펼쳐보았다.


아름다움과 지성, 그리고 고고함을 지닌 러시아 사교계의 꽃이었던 여인 안나 카레니나, 나이가 많고 고리타분하며 감정이 없었던 그의 남편 카레닌(참고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와 토마시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도 역시 카레닌이다. 그 둘은 이 책을 통해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었기에 그렇게 강아지의 이름을 지었다.),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폭풍우를 몰고 다녔던 사교계의 이단아와 같은 존재였던 젊은 장교 브론스키, 이 세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갔던 사랑이라는 속성의 감정과 과정을 다시금 상고해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지났을까? 햇살이 뜨거워(11월의 남반구는 여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나는 다시금 책을 읽었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러 푸른 잔디밭에 그대로 아무렇게나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나 역시도 이곳에서는 다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가방을 베개 삼아 잠시 누워 책으로 햇살을 덮고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는 배가 고파져서 나를 아무도 모르는 낯선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수제 햄버거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호주에서 인기 있는 음료인 레몬라임 비터(톡 쏘는 레몬라임에 탄산수를 넣은 음료)를 들고는 시드니의 상징이 되어버린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로 이어진 로열 보타닉 가든에는 영국 이민자들이 심어 놓은 200년도 더 된 큰 아름드리 고목들이 시원한 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을 추었고, 쏴아하고 소리를 토해 내었다. 그리고 이 짙은 녹음에 구름 한 점 없는 남태평양의 햇살이 하버 브리지 아래의 수면 위에 반짝거렸다. 그 밝음에 내 눈이 멀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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