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내달리던 보잉 747 KE102 항공편은 곧 한국 인천을 향해 이륙할 예정이었다. 그의 첫 시드니 출장이 끝이 나고 다시 그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그는 이륙하는 기체 안의 흔들림을 느끼는 순간 이런 생각이 빠져 들었다.
'만약 이 비행기가 불의의 사고로 공중폭발을 하거나 추락을 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덮칠 것인가? 아니면 항상 준비해 왔던 죽음의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현재 삶의 모습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을까?'
이상은 어쩌면 앞으로 항상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러한 생각 속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주 비행기를 탈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현재의 삶이 허무한 것인지, 아니면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곱씹어 볼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보았던 시드니의 여러 모습들이 벌써 이상에게는 아득히 먼 옛 일처럼 느껴졌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본다이 비치, 포트 스테판, 블루 마운틴 국립공원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한 순간에 기억 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11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줄곧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만을 생각했다.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 줄 것인지, 첫 만남에 어떤 단어를 쓸 것인지, 또 함께 어떤 요리를 해 먹을 것인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또 머릿속에 그려가며 미리 그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어두운 기내에서 잠들지 못한 채 계속 그러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그녀에 대한 사랑이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영혼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확실히 느껴질 때는 어떤 한 대상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이유 없는 사랑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이타적인 눈빛과 긍휼 한 심정이 영혼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관한 수용, 그리고 그 이후의 영원한 존재에 대한 인식과 확신을 가슴과 머릿속에 간직한 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누린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시절 탐독했던 토마스. A. 캠피스의 책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을 기억해 내었다.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는 영혼의 평화를 누린다.
그리고는 몇 달 전에 시작한 여행사의 일이 자신이 살아온 삶과 비교해서도 결코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낄 상황도, 자신의 실수로 여러 사람들이 불편과 손해를 입게 될 상황도 몇 번쯤은 닥칠 것이리라.
하지만 이상은 그것도 그녀와의 결혼과 앞으로 그녀와 일구어갈 가정을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라 결심하며 다시금 그녀와 함께 할 주말 간의 시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