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하자.
더 이상 당신과는 끝까지 함께 못 갈 것 같아.
햇살이 눈부시게 찰랑대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한 차 안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이상은 그녀의 마음속에 마지막 남은 관계의 얇은 실 한가닥이 '뚝'소리를 내며 끊어진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리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초점을 두고는 허탈함과 절망감,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가 끝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차창 밖으로 야속하게도 아름다운 바다의 파도소리가 규칙적인 간격으로 밀려들었다. 이상은 오로지 그 파도 소리만을 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두 아이만을 데리고 이틀간 집을 떠나 제주 동쪽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든 차로 2시간 내외로 갈 수 있는 섬이지만 이미 이상과 그녀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수백 km나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떠난 텅 빈 공간에 홀로 남은 이상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신의 삶의 지도에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한 존재가 떠나버렸으니 넓디넓은 망망대해에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홀로 누워 생각에 잠겼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무슨 이유 때문에 그녀를 선택해 결혼을 했으며, 그 결정 속에 과연 처음부터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혹시나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나 스스로가 결혼을 위해 '사랑'이라고 합리화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혼 생활 중에 늘 그녀는 은연중에 불현듯 그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여기 사랑이 없이 자식들만 남은 결혼 생활이 필요한 한 남자와 자식은 없어도 사랑이 필요한 한 여자의 마지막 선택이 남았다.
과연 그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