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KBS 고국진 PD는 < 1박2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연예가중계>, <출발드림팀> 등 KBS 간판 프로그램이라 불릴 만한 다양한 방송 작품을 연출했으며 2019년 234회 한국PD연합회 TV예능부문 이달의 PD상, 2020년 47회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TV부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현재 인스타그램, 트위터, 브런치 등 다양한 SNS를 이용하여 PD 지망생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PD 지망생들에게 전하는 아낌없는 조언까지, 고국진 PD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은 지난 22일 KBS 신관에서 만난 고 PD와 나눈 일문일답.

- 안녕하세요, PD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05년 1월 1일에 공채 31기로 입사한 KBS 예능 PD 고국진입니다. 2004년 11월에 최종 신체 검사까지 통과했고, 그 다음 해에 입사했어요. 어느새 15년차 PD가 되었네요.(웃음)" - 방송PD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부모님의 영향도 조금 있어요. 아버지는 MBC에서 방송 기술직으로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상심이 크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해서 어머니를 다시 웃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음악을 듣고 자라다 보니 예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음악을 악기별로 쪼개서 듣는 버릇도 생기고, 모든 악기의 조화가 있을 때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음악이 탄생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걸 전부 총괄해서 구현해내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PD라는 직업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 드라마 PD, 라디오 PD 등등 PD라는 직업도 그 분야가 참 다양한데요. 그 중에서도 예능PD가 되기로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5년에 시사·교양 PD로 입사해서 지역 공채 기수로 들어왔어요. 특히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일주일 내내 취재하러 다니고는 했는데 정말 힘들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당시 웃고 울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다름 아닌 예능을 볼 때였어요. '저 예능을 직접 제작하면 프로그램 제작 과정부터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예능으로 장르를 바꾸게 되었죠. 장르를 바꾼 것에 대한 만족도는 1000% 이상이고요.(웃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되나?', '이렇게 덕질을 대놓고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 PD님의 브런치 작가 소개글 중에 '예능프로듀서가 되어 평생 대놓고 덕질하세요!'라는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PD라는 직업은 무언가에 감성적으로 푹 빠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특히 예능PD이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연자를 단순히 출연자로 생각하면 그저 피사체에 불과하지만, 그 출연자에 대해 '덕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들 때 시청자들에게 저 사람이 갖고 있는 진짜 모습, 의외의 모습까지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캐릭터 구현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부수적으로, TV에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들과 친해질 수 있고, '동료'로서 알아갈 수 있는 장점까지 있죠. 그래서 예능 PD로 일하는 것은 최고의 성덕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예능 PD가 되어 '대놓고' 덕질하라는 거예요. 여기서 포인트는 '대놓고'예요. (웃음)"
- < 1박2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연예가중계>, <출발드림팀> 등 KBS 대표 프로그램이라 불릴 만한 다양한 방송 작품을 연출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막 떠오르는 건 세 가지 정도예요. 지역 PD 생활을 할 때 시사 프로그램을 하면서 언론사 촌지에 대해 취재했던 적이 있어요. 이 아이템이 방송에 나갈 때, KBS도 이런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MC에게 90도로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그때 저는 고작 1년차 PD였는데, 방송국 선배들의 빗발치는 인신공격과 항의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두 번째는 (나)영석이 형하고 같이 촬영했던 < 1박2일 >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당시의 PD 리더십은 소위 '나를 따르라'였어요. 방송 제작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PD에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영석 선배는 조금 달랐어요. 모든 스태프, 심지어 막내 작가의 의견까지 다 들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대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은 늘 형이 짊어졌죠. 얘기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차분하면서도 소프트한 리더십이었어요. 저는 잠깐이라도 나영석이라는 좋은 감독과 함께 일했던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요."
- 그렇다면 마지막은 이 프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3.1운동 100주년 기획 윤동주 콘서트 별 헤는 밤'으로 이달의 PD상, 작품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감회가 특히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인지 간단한 설명부탁드립니다. "윤동주 콘서트는 중, 고등학교 개근상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가장 큰 상이었어요. (웃음) 방송 PD로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인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던 것 같고 그런 영예를 윤동주 시인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어요.
주제는 굉장히 교양스러웠는데, 구현은 예능스럽게 하려고 했던 게 이 콘서트의 주요한 특징이었던 것 같아요. 방송 협회에서 이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로 나열한 얘기 중에 하나가, '방송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동원해서 윤동주를 표현하였다'였거든요. 이 콘서트에는 감동적인 음악이 빠질 수 없는데, 그 감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악 도입부에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등을 넣었어요. 또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과 윤동주의 고등학교 후배, 후손들을 홀에 초대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죠. 끝으로 콘서트 제목이 '별 헤는 밤'이었기 때문에 KBS 홀 천장에 빔 프로젝터를 쏴서 별을 구현했어요. 실내이지만 밤 하늘 아래에서 윤동주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었거든요." - 방송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장르가 이 프로그램 하나에 다 담겨있네요. 그렇다면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뭔가요? "섭외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보통 섭외가 가장 어렵고 일반적으로 피드백이 일주일 이상 걸리는데, 섭외 제안을 드린 모든 가수와 배우들이 하루도 안 돼서 출연 확답을 주셨어요. 심지어 7년 동안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던 이적씨도 다음날 하겠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15년 동안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윤동주라는 국민 시인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 방송PD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방송에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은데요. 이후 연출해보고 싶은 특정한 방송 주제나 분야가 있으실까요? "한 분야를 계속 파서 전문가가 되지는 못해도, 방송 제작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한 번씩 지나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내용과 감각적인 영상미, 좋은 감성을 전달하는 드라마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하고 있어요. 노래 가사, 드라마에서 늘 사랑을 갈구하는 건 사랑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직 안 나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랑의 종류도 굉장히 많고요. 그래서 사랑의 끝이 어디인가를 찾아내기 위한 하나의 소스로 저도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5만 명 이상 되는 공연장에서 쇼를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잠실 주경기장에서 하는 BTS 공연, 올림픽 행사 등의 국가 행사, K-POP 최대 행사 등을 한 번 연출해보고 싶어요."
- 현재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 다양한 SNS는 물론 언론고시생들의 최대 커뮤니티인 '아랑'에서도 PD 지망생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주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PD 지망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는 PD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과 자질일 것 같은데요. "우선, 마음 자세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된다 해도 안 되는 일이 많은데,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하니까 더 안 되는 것 같거든요. 분명 PD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PD가 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뤄지게 될 거예요.
다음으로 스펀지 같은 마음. PD는 계속 알아도 모른다고 해야 해요. PD 생활을 하다보면 수많은 장르의 전문가들을 만나게 돼요. 스포츠 국가대표, 마술사, 정치인, 가수, 어부, 애널리스트, 파일럿 등등. 그들과 논의할 일이 있을 때 그들도 의도치 않게 전문 단어를 쓰거든요. 그럴 때 PD가 대충 아는 척을 하면 알려주지 않아요. 그럴 때 모른다고 얘기를 하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거든요. 무엇이든 빨아들여서 내 거로 만들고자 하는 스펀지 같은 마음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해요. 신원호 PD가 '유퀴즈'에 나와서 했던 말인데, PD가 조명을 만질 줄 알겠어요, 사운드를 알겠어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사람들의 힘을 빌려서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 저도 적극 공감해요. PD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구현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좋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옆에 있으려면 그 분들과 소통을 잘 하고 의견을 잘 수용해서 좋은 연출로 구현이 되어야겠죠. 그래서 상을 받거나 좋은 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때일수록 더더욱 나와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그걸 깨우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윤동주 콘서트로 상을 받았을 때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그때 기자님께 특별히 부탁드린 게 있는데, 마지막에 제가 말씀드린 감사한 분들의 이름만큼은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이렇게 PD는 사람 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PD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웃음)" -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방송사 재정이 많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방송 직종의 전망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PD님께서는 앞으로 방송 PD 직종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PD가 되고 싶은 건지,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건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PD가 되고 싶다면 외주제작사, 유튜브, 무엇이 되든 상관 없잖아요. 좋은 회사에 있는 PD가 좋아보여서 준비하는 사람은 공채가 점점 없어지고 경력직 채용이 늘어나면 다른 직업을 알아보겠죠. 그건 좋은 PD가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었던 거예요. 이 직종만 놓고 봤을 때 그 유망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머지않아 대다수 직업이 기계로 대체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존경받는 직업은 스포츠와 엔터라고 생각했어요. 로봇이 하는 축구, 인조인간이 연주하는 노래가 잘 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결국 직접 땀을 흘리면서, 인간의 한계에 계속 도전하는 스포츠와 아티스트는 존중 받고 살아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중계하고 연출하고 기획하는 방송사 PD는 앞으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유지될 거라고 생각해요. 기계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뿐이죠. 기계가 만드는 걸 보고 사람이 감동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PD 직종의 채용 규모가 갈수록 적어지고 위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 반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마지막으로 방송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너무 크게 보지 말고 오히려 가장 낮게 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회사에 비해 금전적인 보상이 조금 많아서 좋아 보일 뿐이지 해야할 업무는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흰머리도 생기고 그러거든요. 그만큼 준비도 설렁설렁 했으면 좋겠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넣어야 할 것 같고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세요. 그런데 부족한 사람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필요해요. 다 가진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겠어요. '옛다, 하나 받아라.'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잖아요. '내가 부족한 게 있는데 이걸 알아냈고, 너희도 한 번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사람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예능 PD예요. 저도 이렇게 해 먹고 있잖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