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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래이 Oct 04. 2021

달콤씁쓸한 에로스_앤 카슨 (2)

달콤씁쓸한


"에로스를 처음으로 "달콤씁쓸"하다고 말한 사람은 사포였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 앤 카슨의 <달콤씁쓸한 에로스>는 사포의 시로 시작된다. 사포 시의 "glukupikron"은 우리말의 순서처럼 "달콤씁쓸한"이지만 영어로는 "bittersweet"(씁쓸달콤한) 그 순서가 다르게 번역된다. 달콤씁쓸한과 씁쓸달콤한, glukupikron이라는 단어의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카슨은 사포가 만든 단어에 어떤 묘사적인 의도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순간에 느끼는 달콤함, 그 이후에 맛보는 씁쓸함. 카슨은 "달콤씁쓸한"이라는 단어는 사랑 이후 고통이나 이별이 온다는 경험적인 순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에로스가 이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의 조합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책에서 카슨은 여러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들의 시에서 에로스의 '사랑'과 '미움'의 역설적인 조합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득 에로스의 달콤씁쓸한, 사랑과 미움, 사랑과 고통의 역설적 조합은 오늘날 우리가 즐겨듣는 노래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Love of my life, you've hurt me
You've broken my heart, and now you leave me
Queen_Love of My Love
 

퀸의 노래 "Love of My Love"의 첫소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사랑, 당신은 나를 아프게 하네요.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이제 나를 떠나는군요." 노래의 시작은 "내 사랑",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부르며 시작한다. 그런데 이어 나오는 진술은 그 인생의 사랑이 자신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니. 


I've got a hundred million reasons to walk away
But, baby, I just need one good one to stay
Lady Gaga_Millions Reasons


레이디 가가의 "Million Reasons"는 또 어떤가. 이 노래를 관계, 사랑에 대한 노래로 생각하고 듣는다면 말이다. "당신을 떠날 숱한 이유가 있지만 하지만, 머물 단 하나의 적당한 이유가 필요해." 어떤 사랑이기에 떠나버릴 숱한 이유가 있지만 곁에 머물 단 하나의 이유가 필요하다는 걸까. 한 관계를 그만둘 이유가 수백, 수천 가지라면, 어째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적당한 이유를 자꾸 찾는 것일까. 그런 '억지'의 이유를 통해 계속해서 사랑하는 상태로 남으려고 하는 것일까. 사랑은 어느 지점에서 지독해지고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일까. 

왜 이 에로스의 세계에서는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되지 않는 것일까. 에로스는 왜 역설 위에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자, 그대는 루저


에로스는 결핍이다. 활성화된 결핍은 세 가지 구조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오는 것......세 번째 요소는 분리와 연결을 통해, 나머지 둘이 하나가 아님을 표시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 
<달콤씁쓸한 에로스>


우리가 읽는 말과 우리가 쓰는 말은 절대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가 욕망하는 그대로의 그들이 아니다. 두 개의 상징은 절대 완벽히 상응하지 않는다. 에로스는 그 중간에 있다.
<달콤씁쓸한 에로스>


당신을 욕망할 때, 나의 일부분은 사라진다. 당신의 결핍은 나의 결핍이다. 당신이 나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에로스는 몰수이다. 그는 사지와 물질, 완전함을 훔쳐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덜한 상태로 남겨둔다. ..사랑은 결정적인 자아의 상실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는 루저다. 또는 그는 그렇게 여긴다. 
<달콤씁쓸한 에로스>

에로스는 경계의 문제다. 어떤 특정 경계가 있기에 그가 존재한다. 닿음과 장악, 응시와 대응적 응시, '사랑해'와 '나도 사랑해' 사이에서 욕망의 부재하는 현존이 일어난다. 하지만 시간과 응시와 사랑해의 경계는 에로스를 만들어내는 중요하고 피해갈 수 없는 경계의 여진에 불과하다. 당신과 나 사이의 육체와 자아의 경계. 그 경계를 없애려고 하는 그 순간 문득, 나는 깨닫는다. 절대 그럴 수 없음을.
<달콤씁쓸한 에로스> 




시대를 거슬러 재평가 받다


앤 카슨은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그녀의 글은 독서와 함께 즉각적인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작가들 중에도 그녀의 글이 어렵고 모호하다고 비판하는 그룹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시간을 들여 충분히 빠져들어볼만 하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고, 장르를 탈피한 그녀만의 사적이며 신화적인 글쓰기. 읽는 사람에게 정신적 자유와 상상력을 증강시킨다.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쓴 첫 책 <달콤씁쓸한 에로스>는 작가의 첫 책이지만 이미 그 안에 카슨만의 세계를 농축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작가들에 대한 탐구와 장르를 탈피한 집필 형식 등 카슨의 데뷔 작품은 이후 그녀가 걸어갈 문학적 길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 

<달콤씁쓸한 에로스>에 대한 미국 작가 존 다카타의 평가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의 의견은 카슨의 첫 책이 어떻게 시간을 관통하며 다양한 계층의 독자층을 매혹하며 새롭게 해석되고 스스로의 가치를 넓혀갔는지 보여준다. 걸작은 그런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다르게 읽힐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 보는 눈에 따라 다른 의미를 던져주는 것.


(달콤씁쓸한 에로스는) 처음에는 그리스 학문에 대한 작업으로 고전학문 커뮤니티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한때 세네카나 몽테뉴, 에머슨이 썼듯, 서정적인 에세이로의 복귀로 논픽션 커뮤니티를 놀라게했다. 그리고 마침내 90년대에 들어서 '문학'으로 재발간되고 완전히 새로운 독자층을 위해 재디자인 되었다.
마침내 시인들을 놀라게 했다. 
_존 다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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