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이다." _지그문트 프로이트
어릴 적부터 나는 꿈을 많이 꾸었다.
아니, 누구나 밤마다 꿈을 꾸는데, '꿈을 많이 꾸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꿈을 많이 꾸는 게 뭔 대단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밤에 잠자리에 누워 꾸는 꿈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해보자.
어릴 적부터 나는 예지몽을 자주 꾸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예지몽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더욱이 자주 찾아오는 생생한 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낮에 일어난 '진짜' 일이라면, 부모님께, 친한 친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는데, 모두 잠든 밤, 내 육체 마저 잠이 든 밤,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황당하고 기괴한 꿈을 도대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설사 말을 한다고 해도 자주 듣는 이야기는 '꿈이잖아' '개꿈이야' '피곤해서 꾼 꿈일거야' 모두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 잠자리에서 꾼 꿈만으로는 나와 당신,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황당한 일로 화가 나고 슬퍼해도 눈을 뜨면 우리는 현실세계에 있지 않는가.
종종 누군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철없고, 세상 물정 몰랐던, 몰라서 오히려 더 귀여움을 받았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올시다. 다시 생각해도 아니올시다. 신이 내게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나의 대답은 No, thank you.
물론, 나 역시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라고는 없이 순간순간을 몰입해 사는 동심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어린시절은 마냥 노랑으로 가득한 세계가 아니었다. 밤마다 꾸는 꿈들, 벌떡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울 만큼 강렬한 꿈들,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지만 잠이 든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다시금 아무 말없이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길 수 밖에 없다.
잠든 얼굴에는 "방해 금지 모드" 같은 어떤 보호막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도 쉽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울 수가 없었다. 다섯 여섯 살에게도 그런 책임감 혹은 무게감이 따라올 만큼, 혼자 깨 바라보는 잠이 든 가족들의 얼굴은 묘하게 평안하고 또 안쓰러웠다.
신이 내게 기회를 준다해도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이를 먹고, 꿈을 꾸면서 이해하게 된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 지혜를 모두 잃어도 좋을 만큼 어린시절이 아름다웠던가. 누구에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 밤마다 나는 다른 세계에 적응해 살아야 하는 이주민 같았다.
매일 밤, 다른 꿈, 다른 세계를 살았다. 흥미진진한 꿈도 있었지만 말로 설명하지 못할 꿈들이 더 많았다. 나의 선택은 확고하다. 다시금 그 꿈의 세계 어린 이주민으로 낯선 무의식을 살아내는 것보다 내 무의식과 세상을 연결해 볼 수 있는 이 나이듦, 현재가 더 만족스럽다.
기억하는 한, 여섯, 일곱 살까지 나는 종종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긴 울음을 울곤했다. 말 못하는 아이가 우는 건, '싫다'는 표현이 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섯 일곱 살은 말을 못할 나이는 아닌데, 종종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 울곤 했다.
어떨 때는 쉽게 울음을 그쳤지만, 어떤 날은 잠을 자고 일어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오래 울고는 했다. 어머니가 달래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달래보기고 하셨지만, 어쩐지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잠자는 동안 꾼 꿈이 이상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울기만 울었다.
때론 기하학적인 도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꿈속에서 쳇바퀴 돌듯 그 도형 안을, 혹은 내가 그 도형이 되어 존재했다. 나이가 들고나서 어린시절 종종 꾸던 그런 꿈이 '기하학적인 도형'이었음을 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섯 살의 내가 그런 꿈을 '말'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했다. 꿈속에서 나는 그런 기하학적인 도형 속에 갇혀 있곤 했다. 도형은 계속 변했고 그 끊임없는 변형의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꿈을 깰 수 있는지, 현실로 돌아갈 방법을 몰라 꿈속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린 나는 그 도형의 세계가 꿈인 것을 알고 있었다. 루시드 드림 자각몽은 그렇게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수면자가 스스로 꿈꾸는 것을 인지하는 자각몽은 사람에 따라 꿈속 내용을 통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물려 변형되는 도형의 세계가 꿈인 것은 알았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 도형의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 할머니가, 엄마가 어서 와서 나를 깨워주기만을 그 도형의 세계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 기하학적인 도형의 세계에서 잠이 깨고 나면 안도와 무서움에서 울음이 터졌다. 내가 있던 세계를 도대체 어떻게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대여섯 살이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 이상한 세계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내 갇혀 있었던 그 세계는 눈을 뜨자마자 사라지고, 어쩔줄 몰라 울음을 터트린 내 얼굴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는 가족들. 어린 내가 그려보일 수도 말로 이해시킬 수도 없는 그 도형의 세계는 난이도 상의 꿈이었다.
그 도형의 세계에 갇혔다 깬 어느 날, 역시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가족들이 와서 달래보았지만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계속 울면 대문 밖으로 쫓겨난다!"
한두번도 아니고, 실컷 낮잠 잘 자고 나서 이유 없이 시끄럽게 우는 내가 못마땅했던 아버지는 급기야 화를 내셨다. 아버지의 호령이 겁이 났지만, 울음을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나는 울어댔다. 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울음이 계속 이어졌다.
"대문 밖으로 나가!"
결국 대문 밖으로 내쫓기고 말았다. 물론 이렇게 내쫓길 때는 대개 어두운 밤이다.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를 내보냈는지, 혼자 대문 밖으로 나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장면만은 또렷하다. 대문 밖 길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괜히 내 속은 모르고 환하게 밝기만한 달을 올려다보며 이제 더 실컷 울음을 이어갔다. 어쩐지 죄책감없이 실컷 울기엔 대문 밖만한 곳이 없다. 내가 갇혀 있었던 꿈의 세계는 모르면서 나를 내쫓은 아버지가 밉고 잠을 자고 일어난 내 자신이 밉고, 또 갇혀 버린 도형의 세계가 믿고, 온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엉엉, 밤하늘 달을 구경 삼아 우는 데 저녁밥을 짓던 어머니가 나를 달래러 나오셨다.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뚝, 울음을 그치고 그만 밥 먹으러 가자고 말이다. 나는 더 울어야 할지, 멈춰지지 않는 울음을 멈춰야할지 고민이다. 실컷 더 어둠 속에서 울고 싶은 마음 반, 그만 어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반. 반반이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