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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Jun 12. 2022

현대미술 한 입

 올해 생일도 여전히 주변에서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다들 재미나고 다양한 선물들을 보내준다. 카카오톡을 통해 오는 여러 기프티콘들과 그 외의 기발한 아이디어들. 살아온 시간들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아직도 연이 닿는 분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챙겨주신다.


 여자친구의 선물도 매번 기대되는 선물이지만, 올해엔 꽤나 기대하며 기다린 사람의 선물이 있었다. 군대에서 알게 된 후임으로 들어온 한 살 형의 선물을 기다렸다. 작년 생일 선물로 내 손으로 골라 읽었을 법한 책은 아니었던 <스토너>를 받아서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먼저 말은 못 하지만 "혹시 올해도 보내줄까? 보내준다면 어떤 책을 보내주려나."


 생일 당일. 박보나 작가의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이라는 책을 보내줬다. 박보나의 미술 에세이. 책 제목 밑에 적혀있는 이 문구를 보고선 쉽게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미술이라면 소질도 흥미도 없는 사람이 나다. 남들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그렇게 즐기지 않는 나에겐 미술책은 어렵다. 미리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의 반납기한이 있다는 핑계로 미뤄뒀다. 그렇게 2주가 흘러 가족 여행이 다녀온 뒤 다시 마주한 책. 숙제처럼 느껴졌지만 혹시 또 모른다는 생각으로 폈다.


 어렵기만 했던 현대미술을 누구보다도 흥미롭게, 다정하게 알려줬다. 모든 현대미술은 아니었겠지만, 그 조금의 단면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책이다. 덕분에 여자친구와 이번 주 환기미술관 가자는 제안에도 흔쾌히 발걸음을 할 수 있었다. 그에 이어 박보나 작가가 쓴 책이 궁금해져 도서관에 가 빌려온 이 책. 언제든 열어볼 수 없을 테니,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은 나를 위해 적어두려고 한다.


 


P.29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가스를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받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사랑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하면서도 결코 처벌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위의 내용은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는 미국의 미술가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였던 조이 레너드가 1992년 아일린 마일스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지지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한다.


 약자가 되어본 자가 약자를 더 보듬을 수 있기에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져왔던 나이기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지만, 추상적이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때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리더를 뽑는 자리라 평생을 리더로 살아온 사람, 기득권이 었던 사람, 엄청난 스펙을 가진 사람 들 중에 뽑지만 그런 정치인들에게서 너무나 우리의 삶과 이질적인 모습을 많이 봤다. 선거철엔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지만 그 후엔 아득히 멀어진다. 다시금 기회를 달라고 하기 전까진. 이 글을 읽고 각자가 생각하는 지도자 상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P.99

 "타인을 불쌍하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은 그 고통이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내 잘못은 아니라는 무책임함과,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무기력함으로 연결된다고."


 소설가·문예 평론가·사회 운동가였던 손택의 발언을 가져왔다. 앞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낄 때면 함께 떠오를 생각일 것이다. TV의 중간광고 시간에 흘러나오던 유니세프 광고와 여러 아프리카 기아 관련 광고들을 보며 많이 느꼈던 나의 이기적인 감정을 관통했다. 운이 좋게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에 감사하는 것도 잠시, 눈길을 돌려버리고 말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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