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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Jul 03. 2022

특별하지만, 보통의 사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로 내가 경험한 것, 깨달은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수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충고를 해주지만 듣는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잔소리로 다가온다. 나중에 그들도 깨닫는 순간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들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읽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총, 균, 쇠]부터 많은 책들이 내가 직접 손을 뻗어 읽기 전에는 그저 다른 이들의 잔소리로 들려 오히려 읽기 싫었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엔 미리 예약해놓은 책을 수령하러 가면서, 책장에 꽂혀있는 다른 책도 한 권씩 같이 빌려오곤 한다. 이번에 그렇게 선택받은 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일 [책은 도끼다]였다. 원래 책을 소개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주변에서 권해도 읽지 않았던 책이지만 스펙트럼 넓혀보자는 마인드로 빌려왔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무척 매력적이라 나온 책을 읽어보기로 했고, 그 첫 책으로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저자가 이 책을 적었던 나이에 처음 군대에서 펼쳤던 예전과 6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책은 역시나 정말 좋았다. 1인칭 시점의 화자가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클로이와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며 겪었을 감정을 풀어서 보여준다. 중간중간 외부에서 관망하는 듯한 해석이 들어와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지만, 이내 우리의 사랑을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표현해두어 빠져드는 책이다.


 화자는 클로이와의 첫 만남을 고대하며 전전긍긍하고, 그만이 그녀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지 못한다. 그렇게 함께 미술관 데이트 이후 식사 장면이 인상 깊다.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까?

  ["여기도 괜찮아요. 헤어드라이어 플러그를 바꿀 필요가 없는 데라면 아무 데라도 좋아요."]

   주말에는 주로 뭘 합니까?

  ["토요일에는 영화를 보고, 일요일에는 저녁에 우울해지면 먹을 초콜릿을 쟁여둬요."]

  

 그런 서툰 질문들 [그래도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 하나를 통하여 나는 그녀를 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배후에는 가장 직접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려는 초조한 신호가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ㅡ 그리고 그것도 연결되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그러나 그런 직접적인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내 연구 대상은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자신이 무슨 신문을 읽는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만 알려주었다.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우리의 소개팅에서의 모습, 혹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쉽게 물어보는 질문들이다. 취미, 좋아하는 음식·영화·장소 등등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질문을 한다.  침묵이 불편해서 하는 질문들도 있었으나, 그것들을 안다면 조금은 그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취미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알 수 없듯, 그들의 선호와 몇 가지 생각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서로를 알기 위한 탐색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함께한 그들을 향해 주변에서 그를 향해 물어본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클로이가 "특별"한 여자인지 물어본다. 화자인 나는 방관자들이 보았을 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나의 친구인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화자인 나의 생각을 정리할 때, 나도 함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눈의 언어는 말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에 고집스럽게 저항한다.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클로이의 외모에 대한 나의 주관적 반응일 뿐이었다. 」

 「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방관자들은 묻는다.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한 인간 외에 무엇을 보는 걸까?」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야?" 20대 초반, 그저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을 때엔 친구들끼리 각자의 연인을 이야기하면 꼭 묻는 질문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어느덧 각자 경험이 쌓여 알아서 잘 만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적으로 질문하진 않지만, 가끔 여자친구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물어본다. 사실 그 경계는 모르겠고, 딱 이게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내 마음을 정의하기 어려웠지만 이 파트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사랑의 달콤함만 맛보게 하지 않는데서 매력적이다. 그들의 사랑이 무너져가는 과정마저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사랑은 첫눈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빠른 속도로 죽지는 않는다.」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


 매력적으로 느꼈던 부분(일상적이지만, 무척 사소한)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장점이 단점으로 바뀔 때의 연인의 시간엔 불가역적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서서히 멀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전과 비슷한 일상적인 대화와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숨 막히는 시간의 표현이 너무 좋다.


「외적 세계는 나의 내적인 기분을 따라와 주지 않았다. 나의 사랑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주던 건물들, 사랑 이야기에서 끌어낸 감정들로 활기를 불어넣었던 건물들은 나의 내적인 상태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영하기 위하여 겉모습을 바꾸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헤어진 뒤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부터 함께한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덮고, 희석하며 순응해가는 과정. 또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시간까지의 표현까지. [책은 도끼다]에서 표현했던 사랑의 모든 과정을 해체해서 보여줌으로 우리의 현재 사랑 혹은 지나갔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준다. 나의 사랑은 남들의 흔한 사랑과는 달리 특별한 점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부숴 버리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특별하다는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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