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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Nov 07.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지금 우리의 상식이 시간의 한 줌이고 허무일지라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쓰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개인적 감상이므로 많이 부족할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 가 볼 영화들을 고르던 중 포스터를 봤었다. 예술영화들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는 꽤나 높은 허들이었다. 자막 없는 트레일러를 보았을 때, 어려운 영화겠거니 하고 자연스레 패스했던 영화. 그럼에도 여자친구와 나의 유튜브 유니버스의 지속된 추천으로 볼 결심이 섰다. 긴 러닝타임에 압도되어 재미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함께.


 시간에 맞춰 들어간 영화관에선 상영 중 취식이 가능하게 변경됨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도 물론 후룹하며 먹는 습관이 있어 좋은 매너의 소유자는 아닐 수 있으나 양옆으로 팝콘 러버들과 함께 시작한 영화의 첫 인상은 그저 그랬다.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배우들과 어디로 흘러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던 스토리. 그러나 세무사를 만나러 간 엘리베이터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부터 영화로 빨려 들어갔다. 멋있게 변신하는 마블영화와는 달리, 개연성 없는 행동(립밤 먹기, 신발 발바꿔신기)을 하여 멀티버스의 나와 연결되고, 끝없는 상상을 보여주고 재미나게 뻗어나간다. 떡밥 회수를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맺음마저 확실한 영화. 등장인물 하나하나 소중히 여겨 허투루 쓰지 않는 영화. 재밌고 신박한 편집과 액션 씬으로 눈이 즐겁고 같이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영화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멀티버스 중 돌로 대화하는 씬이었다. 메타버스에서 쉽게 차용되는 찰나의 다른 선택들이 모여 다른 직업/특성의 에블린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소세지가 손가락인 메타버스부터 무생물인 인형을 넘어 생물이 살 수 없는 행성에서 돌들로 변해 대화하는 장면이다. 엄청난 사운드들 속에 있던 영화관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자막만으로 대화하는 그들의 장면에서 감독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어 이미지도 찾아왔다.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재미난 예술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긴 러닝타임을 소중히 꽉꽉 채운 점도 마음에 든다. 그저 지나가며 액션씬에 코믹한 요소가 필요해서 아이디어 냈을 것 같던 멀티버스 하나하나 스토리를 완성해간다. "I'm not your father"라며 스타워즈 대사를 재미나게 쓰며 등장한 알파 아버지부터, 마지막에 에블린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I'm your mother"라는 장면. 인형 눈 붙이는 남편이 너무 꼴보기 싫었지만 총알을 인형 눈알로 바꾸고 이마에 붙이는 장면. 코인세탁기에 드나들던 아저씨가 에블린에게 했던 "아내가 썼던 향수야"라는 대사 하나도 놓치지 않고 향수를 뿌려주는 장면. 라따구리를 찾으러 갈때 위에서 조종만 하지 않고 아래에서 조종당해주며 다시 라따구리를 되찾으러 가는 장면. 모두 다 웃음과 함께 행복했달까.


 또한 주는 메시지들도 마음에 든다. 세무조사를 받으러 갈 때, 쿠키를 구워가는 현실의 남편은 너무 착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알파 웨이먼드의 모습과 비교되어 다른 멀티버스의 삶을 탐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한 마디는 울림이 있다. 에블린은 세상에 맞서는 투사지만, 세상이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때 우리는 다정함을 보여야 한다고. 세상의 해결법은 다양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각박한 현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에블린과 조이의 관계성 속에 엄마와 딸의 관계성을 넘어, 삶의 의미를 묻는 과정이 좋았다. 수많은 멀티버스를 동시에 경험함으로 모든 일을 통계적인 필연성, '그저 그런' 시시콜콜한 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조이 그리고 그런 삶을 똑같이 느끼며 베이글에 빠지길 바라는 마음에 에블린을 찾아헤멘다. 에블린마저도 멀티버스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포기할 뻔하지만 '다정함'과 가족의 힘으로 의미를 찾아온다. 자칫 허무라는 베이글에 빠져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비관에 빠질 수 있지만, 우리의 상식이 시간의 한 줌이고 허무일지라도 우리네의 삶이 의미 있고 살아낼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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