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글 Oct 22. 2020

당신의 인생은 몇 시입니까?

'필독도서'.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였다. 방학하기 전이면 어김없이 필독도서 리스트를 주며, 이 가운데 몇 권을 읽어서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 세대마다 다른 필독서 리스트를 받았겠지만 대부분 방학 끝나기 직전에 황급히 인터넷으로 줄거리와 느낀 점을 찾아 자기만의 단어로 적어 숙제를 마무리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93년생인 나에겐 우리 문학 전집과 해당 시기의 베스트셀러들이 리스트에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책을 읽을 때엔 흥미를 크게 붙이지 못했는데, 요즘의 학생들도 독후감을 부랴부랴 적고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턴 필독서는 아니지만 베스트셀러로 오르내리는 작품들은 피해 갈 수 없다. 부모님께서 사 오시기도 하고, 선생님들의 무수한 추천이 베스트셀러를 읽진 않아도 친구들 하나둘씩 챙겨와 잠깐잠깐 펼쳐보곤 했다. 나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총균쇠, 정의란 무엇인가 등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어른들에 의해 추천되곤 했다. 총균쇠는 어마 무지한 두께와 재미없어 보이는 표지 덕분에 펼쳐보지도 않고 제목의 의미조차 생각해보지 않을 수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회 선택과목으로 윤리를 하고 있던 나에겐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1독을 하였었는데, 뒤로 갈수록 집중력을 잃고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중 모두가 읽었을 책. 어떻게든 들어봤을 책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도 아니었던 나에게 제목부터 친근하게 다가오고, 공부를 하기 싫을 때 책을 읽으며 위안 삼던 나는 쉽게 책을 폈다. 책을 여는 글이 너무나 인상 깊어 몇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그대, 인생을 얼마나 산 것 같은가?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그대는 지금 몇 시쯤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한번 계산기를 들고 셈해보자. 그대가 대학을 스물넷에 졸업한다 하고,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하는지. 한국인의 평균연령이 80세쯤 된다 치면, 80세 중 24세는 24시간 중 몇 시? 아침 7시 12분.


생각보다 무척 이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시각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는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그렇다. 아직 많이 남았다. 아침 7시에 일이 조금 늦어졌다고 하루전체가 끝장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평균연령까지로 계산한다면 '고작' 아침 8시. 회사를 출근하는 시간이거나 나처럼 백수라면 고작 눈 비비고 일어나 하루를 열려는 시간 정도다.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된 시간이 아닌 충분히 시도하고 쟁취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큰 병을 얻고 난 뒤엔 다른 시각이 생겼다. 각자 인생의 남은 시간이 보인다면 난 몇 시일까?


힘들게 약을 맞고 병원에서 오는 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노약자석이 비어있음에도 앉기 어렵다. 겉으로 봐선 건장한 청년이기에 일반석에 앉아있어도 나도 모르게 주위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며 그때마다 귀여운 투정을 한다. "내가 당신들보다 시간이 더 얼마 남지 않을 수 있어, 다른 관점으로 보면 내가 더 노약자인데.", 이미 인생 시계로 저녁식사는 하셨을 법한 분들을 보며 말을 삼킨다. 


당신의 인생은 지금 몇 시입니까?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