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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Dec 25. 2020

당신은 어떤 바닷가재입니까?

"아빠  들어서 손해   있냐"

우리 아빠 조언 끝에 달리는 한마디. 사소한 조언 하나와 함께 바로 출력되는 그 말. 어르신들의 단골 멘트, 옛말 틀린 게 있냐는 그 말.


옛날 성인들의 말씀을 비롯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를 위해 남겨두신 조언·생각 등에 대해서 대부분 공감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에서만큼은 반대다.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을 작심삼일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은 마음먹은 게 사흘을 못 가서 흐지부지되는 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사자성어지만 작심삼일이라도 하는 게 어디인가 싶다. 연초라고, 구정이라고, 새 학기라고, 여러 시간 분할의 틈 속에서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1년에도 여러 번이나 가진다. 그럴 때마다 앉아서 쓰다 보면 바꾸고 싶은 나의 습관, 가지고 싶은 습관들을 나열하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여러 개 적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며 이미 흐뭇하다.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기도 전에 상상 속에서 이미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변해서 벌써부터 뿌듯하고 알차다.


현실은 쉽지 않다. 다음날부터 타협하는  자신을 쉽게 발견한다.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운 과거의 나를 탓하며 우선순위를 메겨 조금이라도 하는 나에게 칭찬을 한다. 이렇게 3-4 타협하다 보면 다짐 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쉽게 발견할  있다. 유혹이 너무 많은 현대인에겐 작심삼일도 버겁다. 의지가 약한 나만 그런 걸수도 있지만.

병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간만에 연락 온 동생이 본인의 인생 책이라며 평범하고 딱딱한 제목을 가진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건넸다. 예전처럼 책을 읽자고 다짐한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다 읽고 연락하겠다는 당연한 인사를 했지만, 정신없는 병원에서 책 읽기는 나에게 미루기 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중심을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폈다. 인생의 첫 번째 법칙으로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이 책은 훈계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지만, 신기하게도 바닷가재 이야기로 시작한다. 뜬금없는 바닷가재의 이야기로 이 책에 사로잡혀 완독 했기에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 재미난 바닷가재의 성질을 여러분들에게도 알려드리겠다.


저자는 바닷가재가 가지고 있는 기질적인 특성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행동에 적용해낸다. 신경구조가 단순하고 신경세포인 뉴런이 커 관찰이 쉬운 바닷가재는 과거부터 신경계 관련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지만 그중 인상 깊은 바닷가재의 특성은 처음 만난 바닷가재 영역 다툼 때 행동 패턴이다. 크게 3가지 순서로 상대방을 파악한다. 첫 번째 단계에선 입을 쩍 벌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하마와 같이 서로의 집게발 크기로 서로의 힘을 가늠한다. 압도적인 차이일 경우 약자는 인정하고 물러난다. 두 번째 단계는 서로 크기가 제법 비슷해 보이는 경우이다. 화학물질을 내뿜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파악한다. 해볼 만한 상대로 인식할 경우, 서로 몇 번을 약점을 노려보고 자신의 영역이라며 눈치싸움을 한다. 이 경우에도 우열이 가려지지 않을 경우 마지막 단계로 넘어간다.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가려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승자는 패자의 다리나 더듬이를 집게로 뜯어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후의 과정이 흥미롭다. 승리한 바닷가재와 패배한 바닷가재는 뇌 화학, 신경 화학적으로 크게 다르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의 비율이 높아지고, 패배한 바닷가재는 옥토파민 비율이 높아진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옥토파민 수치가 낮아져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그의 영역에서 으스대며 걷는다. 도전을 받아도 움츠리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실제로 세로토닌은 바닷가재의 몸을 유연하게 만든다. 이렇게 유연해진 바닷가재는 부속기관들을 쭉 뻗어 더 크고 무섭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결과와 반대로 패배한 바닷가재는 걸핏하면 도망가고, 숨기를 일삼는다. 그 이후에도 승자는 더욱더 승자의 길을 걷고, 패자는 더욱 웅크리고 영역을 잃고 설 자리가 사라진다.


우리는 대통령·축구선수 등을 꿈꿨던 과거와는 다르게 본인의 평범한 것을 깨닫고 너무 쉽게 많은 것을 포기한다. 너무나도 무모한 꿈을 한 번에 이루겠다는 말은 허황되겠지만 사소한 성공들, 작은 일들의 성취들로 이루어진 삶의 끝에는 누구보다도 늠름하고 멋진 집게발을 가진 바닷가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불 정리부터 시작하라"  해군 대장 윌리엄 맥레이븐의 이야기처럼 새해가 다가오는 지금, 작심삼일로 끝날지 몰라도, 나와의 다짐을 다시 적어보는  어떨까.


* 세로토닌: 보통 행복을 느끼는 데에 기여한다고 여겨진다. 기분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식욕, 수면, 근수축과 관련한 많은 기능에 관여한다. 따라서 세로토닌이 모자라면 우울증, 불안증 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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