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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Feb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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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16일. 여느 날과 같이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쓰러졌다. 기억이 없다. 몇 분 지났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눈을 떴을 땐 옆엔 식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집 강아지 호두가 내 손을 핥아주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데면데면하던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쓰러진 나를 깨워주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어찌나 고맙던지. 이후 정신 차리고 난 뒤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으나, 엄마와 여자친구의 끝없는 만류로 근처 내과에 갔다. 이어 바로 응급실로 가게 되었고 여러 검사 끝에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았다. 갈비뼈 사이 공간인 종격동에 심장보다 더 큰 종양이 있었고 그리고 폐 쪽의 전이까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료진의 말은 차갑고 이기적으로 들렸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다음 날 아침이 되었던 나였는데, 2시간 간격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깼고 공포가 엄습했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하며.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는 R-CHOP 8번, 방사선 치료 17번, E-SHAP 6번, 자가조혈모세포치료까지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 아토피, 결막염 등 자잘한 잔병들이 있어서 항암제 부작용을 많이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수많은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의 주입으로 안정되었고, 몸이 많이 붓는 것을 제외하곤 힘든 점은 없었다. 처음에는 꽃이 피는 봄까지만 고생하자고 다짐했었던 것이 무더운 여름이 지날 때까지만, 크리스마스까지만. 매번 나의 병원에서의 시간은 길어졌고, 확신은 줄어들었다. 2020년은 나에겐 허락되지 않은 시간 같았고, 마지막 조혈모세포치료를 앞두곤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한 것 같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운이 좋아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이 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혈액암의 일종이라며 내가 공부한 간단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왕성한 활동을 하시던 허지웅 씨께서 림프종 확진 판정을 받으셔서 활동을 중단하시고 치료에 전념하신다는 기사를 접했다. 덕분에 사람들도 림프종에 대해 많이 듣게 되었고, 나의 설명도 한결 간결해졌다. 시간이 지나 나의 치료는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허지웅 씨는 관해 판정을 받으시고 과거처럼 왕성한 활동은 아니지만 다시 활동을 시작하셨다. 지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는 나에게 응원을 해주었었다. 너도 똑같이 이겨낼 수 있다고.


 평론가 허지웅 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저 마녀사냥 MC 중 한 명이었다. 20대 초반 마녀사냥 프로그램을 보며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 정도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나의 치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그의 방송 복귀와 [살고 싶다는 농담] 출간에는 질투가 있었다. 딱히 악감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러움이었을까, 괜히 그 책은 펴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지나 어머니께서 주문한 택배에 함께 온 이 책을 발견했다. 힘든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을 때여서 그랬는진 몰라도 책을 집어 들어 금세 다 읽어냈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 때문이었을까, 옆집 형에게 많은 위로와 조언을 건네 들은 것 같았다. 그중 가장 와 닿은 글귀를 소개하고자 한다.(정말 좋은 글들이 많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삶이 알려준 값비싼 교훈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닥을 찍고 고비를 지나 안정을 되찾게 되면 우리는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머리로 알더라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 입으로는 말할 수 있어도 정작 나 자신에게 적용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바닥에서 깨달았던 것들은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그게 언제 그랬냐는 듯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까먹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실수를 반복한다.
_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중에서」


   역시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가서 얻어온 많은 교훈들이 있다. 다시 살게 해 준다면, 남들만큼만 시간을 준다면 지금 여기서 얻은 교훈으로 다르게   있을  같았다. 하지만 어렵게 얻어낸 일상 속에서 나는 다시 교훈을 망각하고 그전과 같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친구들보다 늦어지는 취업, 불현듯 찾아온 것만 같은 탈모와 같이, 죽음 앞에선 내 삶에서 보잘것없던 것들이 마음에 들어찬다.


 모든 하루를 치열하게 보낼 필요도,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하며 조급해할 필요도 없으니  자신에게 소중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던 하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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