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피어난 꽃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 -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서부 칠레 북쪽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사막이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나사 ·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연구에 따르면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곳이다.
7년. 7년 만이다.
수분. 습기. 생소한 물비린내가 일시에 진동했다. 바다에서 보내오는 해무가 유일한 물기이던 아타카마에 작은 한 방울의 조짐도 없이 일시에 비가 쏟아졌다. 배수로 따위 필요 없던 메마른 골목은 물길이 되어 흙탕물이 종아리까지 차올랐고 바깥과 같은 높이 혹은 더 낮았던 집안은 방 안 침대까지 전부 물에 잠겼다.
12시간. 아무도 내릴 줄 몰랐던 비는 12시간을 내리 내리고 왔던 것처럼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고인 물은 말 그대로 땅으로 꺼졌고 오래갈 것 같던 축축함은 반나절도 안 가 바짝 말랐다. 비가 남겨놓은 부산물, 물에 휩쓸려온 붉고 뿌연 흙먼지만이 그 자리가 잠시 젖었다는 걸 알려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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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웁~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공기가 바뀌었다.
한 달 여전, 갑자기 내리 내렸던 비는 그냥 사라진 게 아니었다. 메마른 사막으로 숨어든 빗물은 오랜 기간 잠든 씨앗을 깨워 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들판을 만들어 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들판에는 사막에서 꽃이 피어난 기적 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았다. 이사벨라(Isabella)도 꼬물꼬물 발로 더듬어가며 아슬아슬하게 사람들 사이사이를 거닐었다. 언뜻언뜻 발에 닿는 식물의 감촉이 좋았고 꽃과 잎이 뿜어내는 공기가 연약한 솜털을 쓸어내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9살 이사벨라는 이 공기의 냄새가 좋았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흙냄새가 가신 달라진 공기 속, 비를 잔뜩 머금은 아타카마 사막이 붉은 분홍색, 노란색, 흰색 ‘키스탄테 롱기스카파(Cistanthe longiscapa) 꽃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황톳빛에서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는 게 느껴졌다. 이사벨라는 이 빛깔 사이를 거닐면서 어리고 작은 폐를 열심히 부풀리고 수축시켰다.
엄마 파울라(Paula)는 멀찍이서 딸 이사벨라를 바라봤다. 들리지 않을 테니 아무리 불러봐야 돌아볼 리 만무하다. 이사벨라는 두 살 때 고열을 앓고 나서 양쪽 청력을 모두 잃었다. 그때 너무 섣불리 신을 원망해서였을까? 청력을 잃고 나서 두어 달쯤 지나 신은 딸에게서 시력까지 앗아갔다. 많은 이웃들이 어린아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 짐승처럼 클 거라며 앞선 걱정을 해댔고 딸 이사벨라를 어딘가로 보내 버려야 한다며 청하지 않은 도움을 주려 했다. 파울라가 이를 거절하느라 생전 처음 불같이 화를 내자 그렇게 순진하기만 해선 안된다며 나중에 크게 고생할 것이라 혀를 차가며 호언장담을 했다. 모두들 가난하고 겉으로는 착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파울라의 험한 인생을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사벨라는 웃지 않는 만큼 울지도 않는 아이가 되어 사막에서 가장 착한 아이로 자랐다. 귀와 눈을 대신해 작은 손과 발을 이용해 더듬더듬 조심조심 움직이니 남편을 대신해 파울라가 일 하러 나갈 수 있을 만큼 사막에서 가장 손이 안 가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도 파울라는 딸에게서 눈길을 떼는 것이 어렵다. 근처 사람들은 의식도 못 할 만큼 꽃밭 위를 한 번을 안 넘어지고 자연스럽게 걷고 있으니 신기하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남편 알레한드로(Alejandro)에게 다 식어버린 ‘미코노’를 몇 술 떠먹이고 쓰레기 산으로 향했다. 구리 광산 노동자였던 알레한드로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리광산 노동자였던 그는 몇 년 전 일어난 붕괴사고로 토사물과 함께 매몰되었다 극적으로 구출되었지만… 의식은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이사벨라와는 다르게 듣고 볼 수 있지만 이사벨라처럼 말하지 못한다. 또 이사벨라와는 다르게 걷는 것도 못 하고 움직이는 것도 못 한다. 그는 매일 눈만 떴다 감으며 침대에만 누워있다. 파울라는 쓰레기산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쓸만한 옷을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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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전, 아타카마의 P천문관측소에 미국 NSA(National Security Agency, 국가안보국)의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아니 들이닥쳤다. 호기심 많은 연구원 샘은 성실한 동료 호르헤를 끌고 와 회의실 입구 근처에 숨어 통유리 너머 그들을 훔쳐보는 중이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가는 틈이지만 각도만 잘 맞추면 얼굴이 제법 잘 보인다.
“호르헤(Jorge), 저 사람 누구더라?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누구? 저 NSA 맨 인 블랙?”
“이 봐, 저게 어딜 봐서 블랙이야? 저건 다크네이비라고.”
“하… 샘(Sam), 넌 너무 까다로워.”
“호르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요새는 시시한 사람들이 저런 비싼 슈트를 입고 다닌다고. 진짜는 덩치들한테 둘러싸여서 앉아있는, 저 젠체하는 NSA가 머리를 조아리는 후드 티를 입은 사람이야. 마치 오늘 아침에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하다 바로 온 것 같은, 오늘 하루만 입고 버릴 SPA 브랜드의 후줄근한 옷만 주야장천 입어 대는… 오 마이 갓!”
미간과 콧등에 잔뜩 주름을 모아 무언가 열심히 궁리했던 샘은 마침내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샘, 갑자기 왜 그래? 그러다 우리 들킨다고!”
“호르헤, 봐봐. 너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
“누구? 저 시시한 NSA의 보고를 받고 있는 후디맨? 저 사람이 왜?”
“호르헤 잘 봐봐. 저 사람 애론 왓킨스(Aaron Watkins)잖아. 하늘에는 Milky way(은하수) 우주에는 Watkins way(왓킨스사의 우주탐사 라인). 일론 머스크보다 더 화성에 가까운 사나이. 현재 세계 부호 1위.”
“세계 부호 1위? 저 허여멀건해서 비실비실 쪼개기만 하는 후디맨이 그 애론 왓킨스라고?”
듣고 나서 찬찬히 보니 샘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뉴스에서나 보던 얼굴을 직접 보게 된 호르헤는 세계 1등 부자가 생각보다 왜소하고 자신의 키보다 많이 작다는 사실에 순간 우쭐해졌다. 어깨가 절로 솟아올랐다.
“호르헤, 저 부자가 여긴 왜 왔을까? 우주가 보고 싶으면 직접 나가서 볼 수도 있는 위인인데 말이야. 저 사람 집에는 VLT(Very Large Telescope,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망원경 중 하나) 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망원경도 있을걸.”
“글쎄… 그 이유를 내가 어찌 알겠어.”
“하긴 집 자체가 우리 관측소보다도 좋을 텐데.”
샘이 한 마디에 호르헤의 우쭐한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호르헤는 자신의 왜소한 자산 규모가 떠올랐다. 급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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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확실한 건가요?”
애론은 경호원 5명과 함께 뉴욕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에서 조깅 중이었다. 경호원들은 자신의 왜소한 키가 콤플렉스가 될 수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190cm 이상 거구로만 엄선했다. 대신 5명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특별히 거리를 두었는데 그들 중 한 경호원이 지시를 어기고 세발자국 이내로 들어왔다. 몇 차례 만남이 있던 NSA요원으로부터 온 다급한 연락이 그 이유였다. 불쾌했으나 하필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온 일반인들이 많은 구간을 지나치고 있었으니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건 지난 1년 6개월 동안 매일 30분씩 개인교습받은 ‘미소 수업’. 애론은 이 수업을 통해 감정과 상관없이 언제든 친절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지시를 어긴 경호원을 꾸짖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요원님, 6개월 전의 이야기를 계속하시고 싶은 건가요? 그러니까 이번엔 진짜 확실하다는 거죠?”
그는 지난 6개월 전에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란 곳에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다량의 비가 내리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특이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다며 만남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확실히 그 엘니뇨 현상엔 무언가 특이점이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남극과 북극의 관측소에서 지구 대기 오존의 양이 줄었다는 보고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이후엔 극지방 빙하의 녹는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킬리만자로 만년설의 양이 다시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었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가 감속된다는 섣부른 뉴스도 보도됐었다. 그래서 몇 주 후 또다시 연락 온 NSA 요원이 하는 말을 살짝 들어 봤는데 모두 가설일 뿐 제대로 확증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또 연락을 해대며 이번엔 칠레 아타카마까지 와 달라고 부탁까지 해오고 있다.
[왓킨스 의장님, 이번엔 절대 말뿐이 아닙니다. 제발 직접 오셔서 보고 판단해 주십시오.]
애론은 바로 전용기를 타고 아타카마 인근 칼라마(Calama) 공항까지 날아가 미리 준비시켜 둔 전용 리무진을 타고 이곳 P천문 관측소에 도착했다. 물론 전화기 너머 NSA요원의 말만 믿고 온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그가 보내온 어떤 감자 사진 때문이었다.
“요원님, 그 감자는 어디 있죠? 지난번처럼 시간 중첩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로 제 시간을 낭비하실 생각이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의장님, 이번엔 다릅니다. 저를 제발 믿어주십시오.”
“그러니까요. 그건 물건을 봐야 알 수 있겠죠.”
”네, 네! 그런데… 저희 이미 몇 번을 본 사인데 편하게 이름 불러 주셔도 됩니다. 제 이름은 다니엘 프리먼(Daniel Freeman)입니다.”
“…”
“댄. 저희 가족과 친구들은 저를 그냥 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의장님도 편하게 댄(Dan)이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애론의 왼쪽 입꼬리가 실룩 올라갔다. “요. 원. 님. 물건이나 보여주시죠.”
머쓱해진 NSA 요원이 테이블에 놓인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흙과 돌이 잔뜩 묻은 감자 한 뿌리가 들어 있었다. 애론은 감자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덩치들 중 한 명이 감자가 담긴 상자를 애론에게 가깝도록 옮겼다. 감자들은 하나같이 애론을 보필하는 덩치들의 주먹만큼 크고 실했다. 애론은 손을 뻗어 감자를 만졌다.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에 잔뜩 묻어나는 흙과 중간중간 말간 흰색이 섞인 작은 돌들. 애론은 손 끝에 묻어 있는 흙과 작은 돌들을 말없이 비벼댔다. 양쪽 입고리는 서서히 올라가고 눈은 천천히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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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사벨라가 감자를 캐 왔다.
7년 만의 비가 만들어낸 들판이 더욱 풍성해지고 오아시스의 물이 조금씩 불어난다고 할 그 무렵이었다. 그날, 파울라가 옷가지를 뒤지던 쓰레기산에서 누군가의 실수로 쌓여 있던 몇 벌의 옷에 불이 불었었다. 불붙은 옷은 뜨거운 불기보다 시커먼 연기를 더 많이 뿜어냈고 파울라는 그 독한 연기가 너무 괴로워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연신 눈물을 흘려댔었다. 그때 홀로 아타카마 사막을 거닐고 돌아왔을 이사벨라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내밀었다. 처음엔 흙투성이 돌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주는 건 줄 알았다.
“이사벨라, 이게 다 뭐니? 그 작은 손으로 무겁게 뭘 들고 온 거야?”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어, 어어,”
“어머나, 감자! 이사벨라, 이건 감자 아니니?”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물어봐도 어차피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어어어어어, 어어어.”
듣지를 못 하니 말하는 법도 제대로 못 배운 이사벨라는 요 근래 무슨 연유에선지 마치 무언가 들리는 듯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뱉는 소리는 변함없이 “어.”와 “어.”의 변주뿐이지만 엄마의 말에 반응하는 소리 같다. 처음부터 감정이란 게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인데 가끔 어떤 슬픔, 혹은 기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심지어 "어.”와 “어.” 소리를 내며 동시에 안 보이는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니 있지도 않았던 희망에 자꾸 말을 시켜보게 된다.
“이사벨라, 너… 혹시 엄마가 보이는… 거야? 응? 이사벨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사벨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여느 때의 감정 없는 얼굴이 되어 허공을 응시한다. 무표정한 “어.”와 “어.”의 변주는 속삭이듯 계속되었지만 의미 없는 혼잣말일 뿐, 파울라의 물음에 답하는 게 될 수는 없었다.
“아휴,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파울라는 이사벨라에게서 감자를 받아 들었다. 어째 점점 묵직해진다.
“어머, 이게 뭐야?”
툭! 투두둑! 감자와 감자 사이에서 돌들이 떨어졌다. 자갈과 모래가 하나로 뭉쳐진 작은 감자 만한 돌들이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하얗게 빛나는 결정체도 보인다.
“이사벨라도 참, 눈이 안 보이니 감자랑 헷갈렸나 보네.”
이제 이사벨라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부락의 이웃 몇몇도 사막에서 감자를 캐 온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었다. 파울라는 바쁘게 감자 사이사이에 껴 있는 큰 돌들을 골라낸 후 한가득 챙겨 집을 나섰다. 여전히 알레한드로의 병세만큼 집안 형편도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진다. 쓰레기산에 가는 길에 항상 신세만 지는 사촌 호르헤에게 들러 감자를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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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호르헤라는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애론의 말 한마디에 NSA요원이 급하게 관측소 소장을 호출했고 소장은 글로벌 1등 거물의 요구라는 전갈에 영문 따윈 몰라도 된다면서 직접 호르헤를 찾아 나섰다.
“호르헤, 나 소장님이 뛰는 거 처음 봐.” 회의실 밖으로 뛸 듯이 나오는 소장을 보고 여전히 숨어있는 샘이 재밌다며 속삭였다.
“샘, 그건 나도 그래.”
“어라, 호르헤?! 소장님 지금 네 자리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나는 무슨 잘못 같은 건 한 게 없는데.”
곧 샘의 예상대로 “호르헤!”를 외치는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예상이 적중한 샘은 신나게 호르헤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하지 마, 샘. 도대체 무슨 일이지? 샘,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쓸데없이 샘을 따라나섰다가 괜스레 호르헤만 소장에게 혼날 판이다.
“호르헤! 도대체 어딜 간 거야? 근무 시간에 자리는 왜 비운 거지? 호르헤! 호르헤!”
호르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름이 요란스럽게 불릴 만큼 책 잡힐 일을 한 게 없었다. 요 근래 특이점이라면… 아, 감자! 혹시 파울라가 준 감자 때문일까? 호르헤는 이사벨라가 캐왔다는, 파울라가 무겁게 들고 온 감자가 꽤 좋아 보이길래 소장에게도 나눠줬었다. 생각해 보니 사막에서 감자라니, 말이 안 되는 감자다. 그러니 분명 그 감자를 먹고 소장, 아니면 소장의 다른 식구 누군가가 탈이 났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호르헤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이럴 땐 가해자의 일원보다 피해자의 일원이 되는 게 낫다. 호르헤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소장이 지키고 서 있는 자기 자리로 어기적어기적 돌아갔다. 마치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다가 온 사람처럼.
“오, 호르헤! 어딜 다녀온 거야?”
“그게… 저, 저도… 배가 아파서…”
“배? 왜?”
“아, 소장님 제 사촌 파울라 아시죠? 좀 모자란 애. 그 감자가 사실은 파울라가 준 거예요. 저는 잘 모르는.”
“그래! 그 감자! 그 감자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네!”
호르헤의 얼굴빛이 갈변된 감자색으로 변했다. 벌써 난리가 났다니 이미 망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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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님 다이아몬드가 맞습니다.”
애론과 같은 SPA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의 후드티를 걸친 5명의 덩치 중 한 명이 감자를 분석 중에 나온 결과를 보고했다. 다이아몬드라는 단어에 NSA요원과 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다, 다이아몬드라고요?!!”
오직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호르헤만이 크게 놀라며 큰소리를 질렀다. 다이아몬드라니, 엄청 비싼 보석, 세계 1등 보석 아닌가! 호르헤의 외침에 소장은 눈치가 보여 식은땀을 흘렸고 NSA요원은 눈치 좀 챙기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애론과 덩치들만이 작은 눈길 한 번 안 주고 자기들끼리 숙덕거렸다. 다이아몬드 따위 별 거 아니라는 얼굴이다.
“호르헤라고 했나? 자네, 이 감자는 어디서 났지?” NSA 요원이 감자에 대해 물어봤다.
“그래, 호르헤. 어서 말씀드려, 어서.” 소장이 요원을 거들었다.
“그거야 그건… 파울라라고… 귀가 안 들리는 딸이 있고 또 눈도 안 보이는… 아, 파울라는 제 사촌인데 아타카마 쓰레기산에서 쓸만한 옷 같은 걸 주워다 내다 파는… 어?! 저 뒤에 계신 분의 옷, 그거랑 똑같은 옷도 며칠 전에 주워다가 저더러 입으라고…” 지적받은 애론 뒤의 3번 덩치가 호르헤를 째려봤다. “아니, 당연히 똑같지 않고 비슷한. 정말 좋은 옷인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 파울라가 착하긴 한데 좀 모자라서 사정이 딱해서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고 있긴 한데…”
“의장님 먼저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호르헤가 더듬더듬 계속 늘어놓으려는 말들을 감자를 분석 중이던 다른 덩치가 끊었다. 애론은 이번 덩치의 분석을 꽤 공들여 읽었고 NSA 요원에게는 지금까지 중 가장 친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마음에 드는군요, 요원님. 아니 댄.”
“아, 네? 네. 의장님 뭐든 말씀하십시오.” 댄이라는 말에 NSA요원이 크게 반색했다.
“네, 댄. 댄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댄?”
“당연히 물론입니다. 의장님,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애론은 중간 크기의 감자를 하나 들고선 묻은 흙들을 꼼꼼히 털어 낸 후 감자는 다른 덩치에게 넘겨 버리고 손바닥에 감자에서 털어낸 흙을 모아 댄에게 내밀었다.
“이 흙속에서 다량의 희토류가 발견됐습니다. 특히 네오디뮴(Neodymium 우주선의 자석과 전자 부품에 사용), 프라세오디뮴(Praseodymium Pr 통신장비 자석의 부품에 사용)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이트륨 (Yttrium 우주선의 전기 발전과 열 방파벽에 사용)도 다량 포함되어 있군요.”
“아… 희토류요? 그럼 말씀하셨던 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는 어떻습니까?” 소장이 실망 섞인 목소리를 읊조렸다.
애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동정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이죠, 의장님. 저는 그저 제 가설, 아니 발견한 것들의 결과를 의장님이 한 번이라도 알아주십사 하는 마음뿐입니다.” 댄은 드디어 잡은 애론에게 어필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댄. 기회를 주도록 하죠. 알아가려면 일단 들어봐야겠죠. 댄의 그 허무맹랑한 시간 중첩과 공간 왜곡을 이용해 우주를 이동한다는 외계인 이야기. 그것부터 먼저 들어보죠. 시간 중첩보다 공간의 왜곡부터 자세히. 그리고 그쪽은…?”
“아, 저는 호르헤라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갑자기 불려 온 건데...” 호르헤가 눈도 못 마주치며 쭈뼛쭈뼛 대답했다.
“당신은 계속 몰라도 돼요. 그쪽은 그 감자가 어디에서 재배된 된 건지, 그것만 알아봐 주세요.”
애론이 덩치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니 그중에 몇몇이 호르헤에게 앞장서라는 손짓을 했다. 소장도 대충 분위기를 파악하고 어서 안내하라며 잡아 끈다. 앞에서는 소장이 끌고 뒤에서는 덩치들이 밀어내니 호르헤의 발은 저절로 움직인다. 그래서 잘 모른다고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단 파울라에게 데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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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벨라, 이사벨라, 그러니까 저 사람이 당신의 아버지예요? ---
“어어어, 어어, 어어어어어.”
--- 그렇구나. 저 아버지라는 사람은 당신과 비슷하면서도 당신과 다르네요. 우리를 보지도 듣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건 다른 지구인들과 똑같고. 아버지란 저렇게 누워만 있는 사람인가요? ---
“어어어어어어, 어, 어어어어어, 어어.”
--- 그래요? 그럼 그 어머니란 건 무엇인가요? ---
그들이 찾아왔다.
이사벨라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지구의 소리는 엄마의 울음소리였고 거기엔 아빠가 화내는 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있었던 것 같고. 엄마, 아빠 소리를 이르게 했던,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로 자랄 거라던 아기 이사벨라는 그 마지막 소리 이후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자신만의 세상에 홀로 고립된 외로운 아이가 되었다. 외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말이다. 눈까지 안 보이게 되면서 시작된 무의미한 “어.” 소리만이 이사벨라의 존재감을 알려준다. 그렇게… 다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사벨라의 세상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이고 이사벨라 입장에선 아니었다.
첫 번째 아이. 그들은 이사벨라를 그렇게 불렀다. 이사벨라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들을 느꼈다. 그들은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 중 드디어 나타난, 자신들을 느끼는 작디작은 처음이자 유일한 존재를 환영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느끼도록 넘나들었다. 그래서 막 태어난 아기 이사벨라에게 어떤 지구인들은 밤잠이 없다는 둥, 하루종일 시끄럽게 옹알이를 한다는 둥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지구인들은 그 이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 그냥 이사벨라를 까다로운 아기 취급만 해댔다. 오로지 엄마 파울라와 아빠 알레한드로만이 아랑곳하지 않고 이사벨라에게 항상 웃어줬다.
지금도 엄마 파울라는 이사벨라의 소리가 자신에게 건네는 대화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항상 귀 기울이며 웃어준다. 물론 아이의 따뜻한 두 뺨을 어루만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사벨라, 엄마는 오늘도 잘 다녀올게. 이사벨라가 아빠를 잘 지켜줘서 항상 고마워. 사랑해.”
엄마의 손은 보드라운 적이 없었다. 항상 어제보다 차갑고 거칠었다. 그러니 내일은 더 거칠어질 것이다. 이사벨라의 마음이 슬퍼진다.
--- 이사벨라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당신들 공기의 수분을 더 생성시킬 수 있어요. 그러면 엄마의 손이 더 거칠어지지 않을 거고 어제만큼만 거칠어질 거예요. ---
“어어어, 어어어, 어어, 어어어어.”
여전히 표정 없는 이사벨라가 그녀만의 언어로 중얼거린다. 파울라는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그렇구나, 이사벨라.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도 밥도 잘 챙겨 먹고 씩씩하게 일하고 올게. 이사벨라도 어디 다치지 말고 항상 조심히, 알았지? 사랑한다, 내 딸. 내가 너무 사랑해.”
파울라는 이사벨라를 꼭 껴안고 나서 알레한드로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섰다.
--- 이사벨라, 당신의 엄마라는 것은 당신이 표현하는 것들의 의미를 정말 하나도 모르네요. 어째서 매번 틀리죠? 지구인들은 원래는 다른 사람의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나요? ---
우주 어디에서나 지구를 즐겨 관찰해 왔던 그들은 지구인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수시로 인지하고 사람들의 언어를 제법 정확하게 이해했다.
이사벨라가 처음 귀가 안 들리고 시간이 좀 지나 비로소 무섭다는 공포감이 들었을 때 그들은 괜찮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운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냥 무서워하라고 했다. 언어를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답을 안 하자 그들은 자신들을 거절하냐고 되물었다. 그 질문에도 답하지 못했다. 그때는 대화가 힘들었다. 눈까지 안 보이게 되었을 땐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그냥 들려주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사벨라는 지구의, 엄마 아빠의 언어를 지구에 없는 그들로부터 알아갔다.
“어어, 어어어어어어, 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
--- 음, 당신이 아이라서 그렇다고요? 하지만 당신이 우리와 처음 연결이 되었을 때도 당신은 아이였어요. 어렸다고요. 당신은 언제까지 어릴 예정인가요? ---
이사벨라가 조용해졌다. 이사벨라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이사벨라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 그들이 알려줬다. 그들은 지구 대기권 밖 태양계 너머, 아주 먼 우주 어딘가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고 우주 여기저기를 이동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그랬던 그들이 오랜만에, 이사벨라의 곁에 머물기 위해 지구에 찾아왔다.
--- 이사벨라, 미리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우리들이 당신을 위한 선물을 생성해 내면서 지구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어요. 느껴지나요? 어때요, 이사벨라? 괜찮죠? ---
“어어어, 어어어어어, 어, 어, 어어.”
선물은 아주 좋았다. 이사벨라의 기억 속에서 엄마와 아빠가 활짝 웃을 때 먹었던 것이 감자였다. 이후로 가끔 냄새로만 느낄 수 있었던, 이사벨라가 가장 갈망하는 소원이었지만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감자를 그들이 찾아와 선물했다. 이사벨라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니 정확히 그 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감자를 매일 가질 수 있는 지금이 그들이 말하는 변화라면 당연히 괜찮다. 감자를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이사벨라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웃고 있다.
아타카마,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