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을 보통으로 가진 사람들
입사 후 첫 번째로 받은 지시사항은 팀원들의 프로필 정리였다.
신임 팀장과 직원들의 상견례를 위한 자료이자, 신규 입사자인 나에게 임원 보필을 위해 직원들의 면면을 빠르게 파악하라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사카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파워포인트로 보고 문서를 작성하는 작업이기에 의도치 않게 팀원 전체의 학력, 인사고과, 발령 사항 등을 포함한 개인 정보를 열람하게 되었다. (공식적 핵꿀잼)
프로필을 정리하는 초반에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헐. 또 서울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뉴욕대? 와세다? 이건 뭐야. 홍콩대?
중간쯤 넘어가면서 다소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뭐 또 SKY, 카이스트, 아니면 해외대겠지.
여지가 없었다.
공부 못하면 이런 회사는 못 들어온다는 거야 뭐야. 이런 우리 사회 만연한 학벌주의. 흥.
하며 삐뚤고 못난 마음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얕고 가문 마음이었다.
회사 입사 전에 남자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 오빠! 오빠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
- 응? (무슨 질문이 이래. 하지만 일단 성실히 대답해준다.) 열심히는 디폴트인 거고. 어떻게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지.
-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왜!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그러니깐.
- 음… 열심히 안 한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거지?
하루는 팀원 한 명이 보고 시간 5분이 지났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보고 시간 5분 전에 집무실 앞에서 대기하는 분인데 전화도 받지 않고 이상하다 싶어 팀원들에게 행방을 물어보았는데.
- 혹시, 홍님(여자직원) 어디 계신지 아세요? 3시 보고인데 참석 안 하시고 전화도 안 받으셔서요.
- 아, 화장실 한번 가볼래요? 홍님 보고 시간에 안 나타나면 코피 나는 걸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보니 홍님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코피를 흘리며 세면대 앞에 서있었다.
- 어어어! 홍님! 괜찮으세요? 어떡해. 구급차 부를까요?
- 아, 박쿠쿠님, 보고시간 지났죠. 으악. 어쩌죠. 지금 꼭 해야 하는데, 안 멈추네. 못살아.
코피를 폭포처럼 쏟고 있음에도 제시간에 보고를 가지 못함을 초조해하는 사람과
- 홍님이 코피가 안 멈춰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심각하게 많이 나고 있어요. 그런데 보고 못한다고 걱정하셔요.
- 아, 홍님은 스트레스가 코피로 와서 자주 그런 일이 있어요. 보고 할 수 있으면 하고 가면 좋지. 어쩔 수 없죠. 아마 병원 잠깐 갔다 오면 괜찮을 거예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저 나는, 코피 하나에 호들갑 떠는 미성숙하고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일 뿐이구나, 하고 자조했다.
그렇다.
이 공간은 열심히 안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 같았다. 일이 재미있고, 일로 인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를 찾고, 성장하고, 물론 돈도 벌고. 이런 무수한 이유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주어진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예외 없이, 열심히 해야만 하는 사람들, 로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낭만이란 건 무엇이었을까. 숨차고 싶지 않고, 허덕이고 싶지 않아 몇 번의 드문 날개 짓으로 동네 놀이터 화단만 빙빙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자유를 가장한 자기 방조, 낭만을 가장한 현실도피, 그게 진정 내가 원했던 낭만이었단 말인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했지. 우물을 찾는 걸로는 부족해.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하든 우물을 파야해.
그때부터 나는 직원들 중 제일 일찍 퇴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할 일이 있든, 없든, 일단 그 자리에 있자. 있기라도 하자. 그 누가 언제 보더라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게 나의 목표다.
그것이 내가 이 열심을 보통으로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열심이며, 나만의 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