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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Jun 14. 2023

4. 파이팅은 진심입니다.


두 번의 면접과 인적성 테스트, 레퍼런스 조회, 처우 산정을 거쳐서 입사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


회사의 조직개편으로 인해 신규 임원이 선임되었고, 이에 견인되어 중책을 맡은 신규 임원을 보좌할 비서 직무 공석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내가(아마도 회사 차원에선 불가피하게) 채용되었다.



입사일은 토요일이었다.


입사일부터 의아한 거지. 어쩐지 면접 볼 때 면접관님께서 주말에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지를 여러 형태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시며 물어보시더라니. (아차차. 내가 문제없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


채용담당자를 만나 입사프로세스를 거치고 내가 일할 자리에 던져지듯 놓여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무미하고 건조하게 바라봤, 아니 볼 수밖에 없었다.


가끔 내 앞에서 너무 비현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면 이게 내 일이 아닌냥 잠깐 사고의 흐름이 둔해질 때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그때였다. 마치 잘 짜인 각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정말 이렇단 말이지. 박쿠쿠 인생 갱생을 위한 보이지 않는 손들의 트루먼쇼인건가.


(예시)

Scene#1. 여기는 무역회사 철강팀. 철강을 가득 탑재하고 말레이시아로 가던 배에 구멍이 뚫렸다는 긴급 콜을 받는다. 팀장은 팀원을 비상 소집하여 해결책을 강구하고, 팀원들은 동분서주하며 방안 모색을 위해 뛰어다닌다.

feat. 곳곳에서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 끊임없이 인쇄물이 출력되고 있는 프린터기 소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직원들의 발소리.



그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붙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뚝,

떨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는 딱 하나였다. 일단 뭐라도 하는 것.

내 앞에 울리는 전화를 받고, 노트북을 켜고, 담당자가 나인지 어떻게 알고 보내진 메일을 읽고, 답하고, 전부 다 급한 건이라며 던져지는 업무들을, 그저 처리했다.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가르쳐줄 여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가르침을 받는다는 행위는 이뤄질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전혀 야속하지 않았다.


아, 다들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이때부터의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리고 순식간의 시간이란, 현재까지 유효하다.


나를 자리로 안내하고 돌아가는 채용담당자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이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던가, ‘파이팅‘이던가.


그날로부터 약 10년 후 같은 회사에서 채용담당자의 직무를 맡은 내가 저 당시 나를 인솔했던 채용담당자의 ‘마음의 소리’를 대신해본다.

‘알아서, 잘, 하셔요. 파이팅은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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