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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Aug 29. 2023

출근길 아무 말 대잔치. 4

타의적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몹시 억울) 우리 집 정원을 차지하려는 고양이들의 싸움 때문이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지만 한낱 닝겐이 길냥이의 삶의 고독을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오레오는 임산부니까 나초가 조금만 양보해 주고, 나초는 매일 오지 않으니까 오레오가 조금만 양보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하지만 양보는 마음에 차고 넘칠 때 하는 것이라고 오래전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일지 모른다.


출근길 늘 듣는 ‘출발fm과 함께’의 선곡이 오늘 정말 예술이다. 쇼스타코비치 왈츠에서 눈물 한 방울, 히사이시조 썸머에서 눈물 두 방울, 에릭 사티 Je te veux에서 짐 싸들고, 슈만 피아노 콰르텟에서 집에 올 뻔했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옛다 이거나 받아라 하고 우두두두 떨어져서 허둥지둥 회사 안으로 비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버렸다는 이야기.

쇼스타코비치 왈츠를 들으면 이은주배우의 건조하지만 물기 있는(역설법)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중간에 나오는 호른도 너무 감각적이고 따뜻하다. 세상을 둥글게 뭉쳐주는 너그러운 소리.




비가 내리면서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 때는 갑자기 치지도 못하는 골프가 치고 싶어 진다. 목적지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치는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의 세기를 이기지 못해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공의 입장에서 참으로 겸연쩍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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