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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Aug 30. 2023

오이 박사 이야기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 오이를 굉장히 싫어하기로 유명한 친구가 있었다. 전교생이 그 친구를 오이 헤이러로 부를 정도였다. 그런데 수능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오이 헤이러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폭탄선언을 했다. “나, 오이 박사로 살 거야.” 다들 이게 무슨 개가 풀을 다채롭게 뜯어먹는 소린지 의아하게 쳐다봤다. “나 평생 오이를 혐오하고 살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오이 박사로 살 거야. 두고 봐.” 모두 오이 헤이러가 헛소리를 아주 창의적으로 하는 재주가 있다며 웃었다. “너 오이 겁나 싫어하잖아. 무슨 말 같지 않는 소리를. 그리고, 오이 박사가 뭐 하는 건데?“ “오이 박사는 오이에 관한 모든 것을 하는 박사야. 아 거기까진 모르겠고 일단 나는 오이 박사가 될 거야. 생각해 보니 나 어릴 적부터 생긴 게 오이를 닮았다고 집에서 별명이 오이였어. 아주 흥미로운 복선이라고 볼 수 있지. 오늘부터 이름도 바꿀 거야. 나 이제부터 박오이야. 플리즈 콜미 오이. 큐컴버.”


박오이는 수능을 치지 않았다. 유럽의 어느 시골로 오이를 배우러 간다는 말과 함께 박오이는 우리들 곁에서 사라졌다. 그곳이 프랑스라는 소문도, 스위스라는 소문도 있었고,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친구는 농장 어딘가에서 오이를 따는 박오이를 본 것 같다고도 했다.


5년쯤 흘렀을까. 어느 월간지에서 우리들은 박오이를 발견했다. ‘오이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어 국내 최초 오이 전문가가 된 박오이. 오이에 관한 모든 것을 해.’

“와 이거 뭐야. 이거 완전 기만 아니야??? 얘 오이 헤이러잖아!!! 지가 오이의 꿈을 왜 이루냐고! 와 진짜 이름까지 바꿨네. 사기 견고하게 치네.“ 라고 소주를 마셨다. 오이 전문가 박오이는 오이 박사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며 오이로 유명한 미국 어딘가로 다시 오이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들은 괴짜 기질이 있던 박오이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박오이 없는 자리에서 박오이를 위로했다. 또, 박오이 자신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박오이는 가짜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는 자조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오이 박사가 되지 못하는가.


각자의 삶은 나름의 방식으로 흘러.

19살이었던 오이 헤이러 박오이는, 38살의 오이 박사가 되어 있다.

오이 박사라는 말의 최초 창시자이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매스컴에 출연하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돈도 보란 듯이 많이 번다.

이제 아무도 감히 박오이의 행보를 가짜라고 말할 수 없다. 19년 동안 오이를 싫어했던 박오이는, 오이 박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19년을 오이를 좋아하며 살았다. 아마 앞으로 남은 40년 이상의 세월도 오이를 좋아하며 살 것이다. 오이를 싫어하던 박오이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오이 박사 박오이만 세상에 남아있다.


가끔 박오이가 떠오른다. ‘나, 오이 박사로 살 거야!’라고 말하는 박오이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그럴 때면 늘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따라온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으로 남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살고 있는가.

이전의 내가 어떠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 뚜벅뚜벅 앞으로. 나로 향하는 절경은 나만이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오이 박사는 누구든 될 수 있다.


* 실제로는 ‘오이’를 다른 개체로 바꿔야 합니다. 알려진 분이라 조심스러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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