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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곰 Apr 23. 2020

동물의 숲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라건대

2020년 4월 22일,  50번째 지구의 날을 맞아

2014년, 나는 큐슈를 자동차로 여행 중이었다.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구마모토시의 캐릭터 구마몬을 보는 것이었다. 큐슈의 중간쯤에 위치한 구마모토로 가던 길에 들렀던, 한적한 국도의 어느 휴게소에서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휴게소는 일반적인 휴게소라기보다는 목장을 컨셉으로 지역 특산물과 우유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곳이었는데, 시설 뒤편의 비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이 있었다. 한두평 남짓한 비좁은 철창에 갇혀 있는 것은 반달가슴곰처럼 덩치가 작은 까만 곰 한 마리였다. 비전문가인 내가 언뜻 보기에도 곰의 상태는 몹시 나빠보였고, 비좁은 철창을 계속 왔다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반복했다. 이런 곳에 왜 곰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곰 캐릭터인 구마몬을 보러 가던 길에 목격한 그 곰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재현된 곰'인 캐릭터나 곰 인형 등은 그토록 좋아하면서 그 곰의 원본인 살아숨쉬는 곰의 존재와 고통에 대해서는 잊고 있다는 점에 나는 지독한 모순을 느꼈다.


구마몬과 대배우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그 제목처럼 마을에 함께 사는 동물 주민의 존재를 빼놓고는 성립이 불가능한 게임이다.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의 생활에 육식이 구현되어 있지 않고 사실상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가까운 생활만 가능하도록 세계관이 구현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주민을 얻기 위해 수백번의 노가다를 불사한다. 닌텐도가 판매하는 일종의 '가챠' 상품인 아미보 카드는 전작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 때는 4장에 3500원에 판매되었었는데 가격이 폭등했다. 미국 아마존과 일본 아마존에서도 중고품 카드 1장이 몇 만원씩 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닌듯 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제품 공급 부족과 집에서의 즐길거리를 찾는 수요가 맞아떨어져 '동물의숲 신드롬'이라고 할만한 비정상적인 열풍이 불고 있다.

'귀오미' 카드는 일본 아마존에서 4980엔, 그러니까 약 5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면서 나는 큐슈에서 갇혀 있는 까만 곰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게임 안에 재현되어 있는 동물 주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열광하고, 원하는 동물을 얻기 위해 시간을 쏟아붓는 노가다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서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는 사이 동물들이 도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뉴스는 무척 역설적이다. 그 와중에 나를 무척 슬프고 화나게 했던 기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돌고래의 죽음'이었다.


<동물의 숲>을 즐기는 사람들이 실제 살아있는 동물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우리가 수족관에서 만나는 돌고래는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그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잡혀온 돌고래들이다. 악명높은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 사냥에 의한 것이다. 국제적인 비난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고래 사냥과 돌고래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8년 환경부는 '잔인한 방식'으로 포획한 돌고래 수입을 금지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2019-2020 시즌에만 "생포 180마리, 살육 560마리 등 총 740마리의 돌고래가 희생"되었다.


광범위한 동물학대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사육곰 문제가 심각하다. 과거, 웅담 판매를 위해 정부에서 사육을 장려했던 곰은 이제 애물단지가 되어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평생을 좁은 철창에 갇혀 살다 죽는다. 그런 곰이 여전히 국내에 500여 마리가 넘게 존재한다.

사육곰 문제를 고발하는 녹색연합의 광고


동물의 생존 문제는 당연히 환경변화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과학자들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50년쯤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북극곰이 얼음을 잃고 굶어죽는다면 바다거북은 쓰레기를 먹고 죽는다. 남극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될 정도로 상황은 이미 심각하다.


인간의 눈요기와 돈벌이를 위해 희생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물원이 동물복지를 우선하여 윤리적으로 운영되도록 감시하고, 북금곰이나 고래 등 동물원에서 전시되기에 부적절한 동물들이 더이상 '납치'당하여 동물원에 새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여론을 만들고, 지구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을 불매하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그 일들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동물들을 <동물의 숲>에서만 보게될 미래를 곧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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