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곰 Nov 17. 2020

"중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돌이켜 떠올리게 하다

10년 전, 저는 포털 뉴스 에디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편집했던 뉴스나 어떤 사건들은 '2010년에 일어난 일'로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가령 천안함 침몰이나 누자베스의 죽음, 그리고 법정스님의 입적 같은 일들이지요.


본인은 신앙심이 트럼프의 교양만큼도 없는 자로서, 저에게 종교란 미식축구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치도록 열광하는 것이지만 나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그런 것이죠. 그런 저에게도 법정스님 입적 당시 재조명 되었던 스님의 말씀들은 가슴을 찌르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줍잖게 청년들을 위로한답시고 오지랖을 떠는 '힐링 콘텐츠'나 자기계발류의 담론 따위는 극도로 혐오하는데요, 법정스님의 말씀을 묶은 책들은 그런 장사치들이 찍어낸 싸구려 위로 혹은 충고와 비교하면 용과 구더기만큼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법정스님의 말씀은 정말 맑고 향기로운 어떤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꾸며낸 말들이 아니었죠.  


법정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그 후로 몇 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취업하고 돈벌고 아둥바둥 부대끼며 살아내야하는 필부들의 평범한 속세에서 한발짝 벗어나서 그럴듯한 말 몇마디 하는 장사꾼을, 대단한 깨달음의 경지를 가지고 있는 시대의 멘토인양 미디어가 띄워주는 그런 일들이 유행했던 흐름들이요. 그게 얼마나 심했냐면,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와 문재인 모두 화천의 이아무개를 찾아갔을 정도였으니까요.


요 며칠 사이 "풀소유"로 구설수에 오른 그 사람이 '하버드 출신의 스님'이라는 이력을 내세워 스타덤에 오른 것도 그즈음이었죠. 그런데 저는 그 사람의 글을 보면서 늘 불쾌감을 느꼈어요. 도대체 직장을 다니지도, 결혼하지도,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당당하게 남의 인생에 충고를 하는 걸까? 잘 쳐줘봐야 '좋은생각'에 나올법한 '좋은 글귀' 정도에 불과한 그 사람이 하는 아무 말들이 잘 팔리는 것을 볼 때마다 모래가 씹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화려한 학벌을 간판으로 걸고 스님 코스프레하며 싸구려 힐링을 파는 장사꾼이 "법정스님이 인세 덕분에 무소유가 가능"했다는 말 따위를 지껄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지죠.


원광대 법학과 출신의 어떤 사람에게 일전에 듣기를- 조계종에서 전국의 절들로 감찰 같은 것을 다니는데, 한번은 어느 절의 주지가 감찰 온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는 현금으로 8천만원을 꺼내며 눈감아 달라고 했더랍니다. 그 중은 8천만원으로 면죄부를 사고도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 거겠죠. 돈을 좋아하는 종교인은 예나 지금이나 참 흔한 것 같아요. 종교인이 돈을 가까이하는 것은 곧 타락이잖아요. 법정스님이 30여권의 책으로 받은 수십어원의 인세를 전부 베푸는데 쓰신 데에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까닭도 있지만 종교인으로서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는 것을 멀리하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법정스님처럼 맑고 향기로운 종교인이 흔할리 없겠죠. 있다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는 어려울테고요. 유명세를 치르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분에 충실한 것은 어쩌면 법정스님 정도의 경지에 이른 분들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신나게 까서 '활동중단' 선언까지 한 승려를 손쉽게 비난하며 숟가락 얻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성취도 깊이도 없는 사람을 시대의 스승이나 멘토인양 띄워주고 마이크를 쥐어주는 미디어의 얄팍한 장사는 그만 보았으면 해서요.


우리 모두 이 생은 처음이고, 모두는 너무나 각자 고유한 개인이라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두기에는 서로의 삶의 배경과 결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한 진실을 무시하고 그럴듯한 말로 가르치려 들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위세만 더하려 들 뿐인 가짜 스승, 가짜 도인들에게 이제 그만 속아줄 때도 되었거든요. 법정스님은 법문 말씀에서 이렇게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흔히 나만 믿고 살라."고 하면서 신도들에게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중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자기 집도 떠나온 이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언제 변할지 모르는데, 믿을 게 따로 있지, 그런 데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에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부처님이 "나만 믿고 살라." 같은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그 밖의 것은 다 허상입니다. 여기에 불교의 참 면목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허상입니다. 자귀의 법귀의. 의지하고 기댈 것은 자기 자신과 진리 밖에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나는 잎과 꽃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각자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꾸어 온 그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치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의 숲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라건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