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니 달리 보이는 옛날이야기
칠월 칠석이다. 너무도 사랑하지만 친정아버지인 옥황상제의 반대로(혹은 둘이 자기 일을 게을리하며 신혼의 달콤함 만을 즐겨서) 생이별을 한 견우와 직녀를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 떼들이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는 달콤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자꾸 해 달라고 졸라대던 기억이 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면 새까지도 그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마음에 가슴 저리기도 했었다. 또, 학교 선생님들이 머리가 잘 안 돌고 멍 때리 있으면, '새대가리냐?" 하실 때마다 견우직녀가 밟고 가서 그렇지요, 하고 까마귀 편을 들에서 속으로 투덜대던 기억도 있다. 40여 년 전쯤....
시간이 흘렀고, 세상도 변했다. 오래 끼고 있던 숙제 하나를 끝내고 멍 때리며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오작교는 밤에 생겼을까 낮에 생겼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꽂혔다. 이 설화가 은하수를 가운데 둔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 현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니 그럼 지금쯤은 오작교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 아무리 내다봐도 그냥 가로등밖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다. 사실, 진정한 하루를 함께 하려면 벌써 견우와 직녀는 진작 만났어야 하고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으려면 전 세계의 까마귀들이 한 열흘 전부터는 모이기 시작해 지금쯤은, '아이고 두야"하고 그들이 밟고 지나간 자신들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어야 할 텐데, 오늘은 참새 한 마리도 없이 그저 고요하다.
아쉬운 건, 2023년, 견우직녀와 같은 이야기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직녀가 옥황상제의 딸이건, 선녀건, 성인이 되어 자의로 혼인을 한 견우와 친정아버지가 둘을 떼어 놓고 생이별을 시킨다는 것은 해외 토픽쯤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하고 나오지, 대한민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일단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친정아버지이신 옥황상제는 접근 금지 처분을 받으실 테고, 견우와 직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SNS에 올려 도와달라할 것이다. 이에 격노한 옥황상제께서 화를 좀 내시면,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 섭외 들어가 직녀와 함께 출연, 오은영박사의 설루션을 하나씩 하셔야 할 것이고, 시청률이 좀 오른다 싶으면, 유재석의 '유퀴즈온 더블락'에 견우와 직녀가 출연, 옥황상제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결국 어찌어찌 결혼에 성공하고는 '동상이몽'의 고정 게스트로 옥황상제 따님의 살림 적응기가 방송을 타며 유명인이 돼서, 소를 칠 일도, 비단을 짤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혹시 자녀 교육 때문에 직녀가 외국을 가 있어도, 견우와 직녀는 비행기 1등석을 타고 가서 만나지, 까마귀들이 만든 오작교는 동물 보호 차원에서 감사하다며 신동엽의 동물농장쯤에 후원금을 보내지 않았을까?
나의 이런 엉뚱한 상상 속에 혹시라도 견우와 직녀의 이별이 은하수를 건넌 이별이니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고, 신성한 까마귀가 진짜 오작교를 만들어 그 둘의 영을 만나게 해 준다면.... 2023년 여름, 이 더위에 까마귀가 떼로 몇백만 마리씩 나타나 오작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만들어준다 한들, 구청, 시청에는 악취와 오물 때문에 못살겠다는 민원이 폭증, 공무원들은 까마귀 퇴치에 무엇이 좋은가를 검색하고 있을 것이고, 동물 보호 단체들은 이런 희귀한 현상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며 집회를 하고 있을 것이며, 견우는 자기가 견우라 이야기도 못한 채 어딘가에 숨어 있으며 온갖 악플에 시달릴 테고..... 폭염도, 까마귀 떼도 막지 못한 것은 결국 네 탓이다 내 탓이다 하며 다들 문제의 해결 방법은 생각도 않고 까마귀 떼들보다 더 큰 소리로 깍 까악 댈 테니..... 와우! 나는 내 손자들에게는 견우직녀 이야기는 절대로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는 건지 내가 너무 느린 건지... 이야기는 이야기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헛소리를 해대는 오늘은 유난히 그리운 사람이 많아지는 밤이다. 언젠가는 나도 다리를 건너 그들을 만나러 가겠지... 그때 내가 남기고 가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를 했네, 안 했네, 누구의 잘못이네 아니네 하며 다투지 말고 그저 안녕하고 보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오작교는 아니라도, 우리는 모두가 다 은하수 저쪽으로 건너가야 하니까.
지난주 은하수를 건너가신 고모부께,
제주도에서 문상 가지 못한 죄송함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제 남편이 먼저 가 있으니 잘 모실 거예요...
꼭 뵈러 갈게요... 시간이 오면....
편안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