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로 돌아갑니다
2024년 게릴라처럼 맥락 없이 여기저기 쏟아지던 장맛비가 그쳤습니다. 무덥지만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언제 비가 내렸나 싶네요. 하루 전만 해도 비가 안 와도 혹시 내릴지 모르는 폭우에 대비해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었는데, 오늘 하늘은 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화창한 하늘입니다.
해가 쨍쨍 내려쬐는 것을 보며, 저는 제 인생의 우울함을 털어버리려 합니다. 지난 7년여를 불행과 슬픔 그리고 이별이라는 불행의 폭우를 맞은 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매일매일을 제 인생에서 하루를 지워나간다는 생각으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제 인생의 예보는 매일 흐리고 비 오는 날들뿐이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두려워 제 자신을 집에 가두어 놓고 그 누구도 접근금지였습니다.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 그저 숨만 쉬고 있었던 나날들인 것 같습니다. 남편의 암투병, 그리고 사별이라는 상상도 못 해 봤던 일들을 겪어내면서 나 자신은 돌보지 않으며, 아니, 나를 돌보는 게 죽은 남편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는 이상한 망상에 빠저 지난 몇 년여를 흘려보냈습니다.
슬펐습니다.
아팠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매일매일을 우울에 빠져 있던 저를 구해준 건,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이런 엉망인 상태인 저를 믿고 친구가 연주를 맡겨 주었습니다. 악기통을 열고 나무 냄새를 맡고, 바이올린을 드는 순간, 저에게 실낱같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악기를 들고 연습을 시작하니 제가 사랑했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베토벤을 다시 연주하고, 브람스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금씩 우울에서 빠져나와 저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슬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습니다. 아픈 것도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고 남은 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에서 한 발짝 물러나 돌아본 제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건강부터 챙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제 슬픔을 이해하고 기다려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만 빼고 세상이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세상은 저를 기다려주고 있었더군요. 매일, 조금씩, 저는 우울에서 헤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제가 소심하게 내미는 손을 잡아끌어주었고, 슬픔도, 아픔도 다 버리고 나오라고 용기를 줍니다. 엉망이었던 제 마음도, 몸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제 삶은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이 아닌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희망과 사랑으로 채워갈 겁니다.
이제, 웃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남편을 보내며 저는 웃음을 잃었었습니다. 앞으로는 웃을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저를 다시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2024년 1월, 갈비뼈에 금이 가며 제 글을 쓰는 마음에도 금이 갔는지, 글도 쓸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 글이 6개월 만에 올리는 첫 글입니다. 이 글을 쓰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 바이올린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 김유정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망인 김유정이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정, 작가 김유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예정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비바람이 치는 날도, 눈보라를 헤쳐나가야 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행복한 날들로 채워나가려 합니다. 끝나지 않을 장마가 언젠가는 지나가고 화창한 하루가 펼쳐지는 것처럼, 제 인생의 장마도 지나갔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저의 오늘은 맑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