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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Jan 23. 2021

전공의 일기.

5-33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울로부터 전해 들은 할아버지의 상태는 분명 패혈증 쇼크였다. 할아버지의 연세와 기저 질환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퇴원 전에 시행한 혈액검사도 이상소견은 없었고, 입원 중에 발열도 없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패혈증 상태임은 분명한데 원인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게 있었을까? 분명히 다 확인을 했는데...... 이제 병원에서 보지 말자고 약속해놓고 왜 다시 오신 건지......' 


내적 불안이 심해졌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불안감이 엄습했을 때 결과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일과가 끝나고 서울의 동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 할아버지 어때? 괜찮아?"


"어, 지금 바쁘니까 조금 이따가 통화하자. 내가 다시 전화할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모니터링 기계의 알림음이 날카롭게 고막을 긁어댔다. 분명 중절모 할아버지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생사의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무섭게 질주하는 모양새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된다면, 지금쯤 승압제 요구량은 늘어나고 있을 것이고, 항생제에 반응이 없다면 이제 정말 끝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폐는 괜찮은 건지, 신우신염이 원인인 것은 아닌 건지,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은 아닌지, 혈액검사 결과는 어떤지 정말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절망스러웠다. 

https://www.pexels.com/ko-kr/photo/instagram-gmail-android-89955/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서울에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다시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서울의 상황을 모르기도 했고, 담당의가 아닌데 처치 과정에 지나친 개입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동기가 적절한 처치를 했으리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날 정오 무렵 중절모 할아버지의 상태가 더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상대로 승압제 요구량이 늘어갔고, 배양검사 결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밤사이 쇼크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투여한 수액이 연한 폐조직 바깥으로 빠져나와 할아버지의 폐는 물에 잠긴 상태가 되어있었고,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하고는 있었지만 감염이 조절되지 않아 열은 40도까지 솟구쳤다. 


물에 잠긴 폐를 정상적으로 복구하기 위해 이뇨제를 투여한다면 할아버지의 혈압이 더욱 조절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산소 요구량이 늘어날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현재는 비강을 통한 산소 주입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관 내 삽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응급상황에서의 처치는 의사의 지식과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환자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담당의로서 할아버지의 질병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했던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이틀이 지나고, 중절모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승압제 요구량이 여전히 높았고, 불안정한 혈압을 이유로 이뇨제를 투여할 수 없었다. 응급으로 흉관을 삽관하여 흉강 안에 고인 물을 빼내려고 시도했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기관삽관을 피할 수 없었고, 가느다란 호흡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되었다.  


"형 상황은 좀 어때?" 


"전이랑 비슷해. 크게 나빠지지도 그렇다고 크게 좋아지지도 않았어. 일단 승압제는 줄이고 있는데, 이제 Self(자발 호흡)가 돌아오는지 봐야지." 


"마지막에 mental(의식) 있었어?" 


"조금 쳐지기는 했는데 이후에는 ICU(중환자실)에서 intu(기관삽관) 하기 전에 Sedation(진정) 걸어놔서 분명하지는 않아. 아무래도 Sedative(진정제)를 끊고 의식 돌아오는 걸 봐야지. 아직은 이른 것 같아." 


"Source(감염원)는 뭐 같아?" 


"CT에서는 UTI(Urinary tract infection, 요로계 감염) 같고, APN(acute pyelonephritis, 급성 신우신염)도 동반되어 있어서 그쪽을 제일 의심하고 있어" 


"Urostomy(요루) 환잔데 그동안 voiding(배뇨)가 잘 안되었었나? 왜 그렇지?" 


"일단 다행인 건 U/O(urine output)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거니까 경과를 지켜봐야지. HD(hemodialysis, 투석)는 안 돌려도 될 것 같아. 어지간히 불안한가 보다. 계속 전화하고" 


"계속 내가 보던 환자잖아. 신경이 쓰이네. 잘 좀 봐주세요" 


"안 그래도 없는 머리 더 빠지게 생겼어. 상황 변화 있으면 또 알려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있어" 


"고마우이. 변화 생기면 꼭 연락 줘" 


"OK." 

https://www.pexels.com/ko-kr/photo/4094199/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잘 견뎌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걱정스러워 수술을 받겠다고 결정하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상황이 할머니에게 보이는 마지막 모습이 되는 것을 할아버지 또한 원치 않을 것이다. 부디 잘 이겨내시길.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107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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