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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Mar 08. 2024

은행원 생존일지 3.

인어공주로 죽긴 싫어요


갱년기가 된 엄마에겐

아주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다.


그 중 하나는

침이 나오지 않는 증상이었고


침이 사라진 입 안은

온통 갈라지고 목이 쉬어버렸다.


평생 교사로 살았던 엄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잠동무가 된지 5년.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나 또한 무조건 감기행이다.


기관지가 약한지

기침감기가 잦은 아이와


그런 감기가 옮을 때면

목이 온통 쉬어버리는 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은행원의 일에는 정말 차질이 많다.


충분한 설명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목소리 잃은 은행원이란

얼마나 불편한 존재인지.



그래도 리테일 창구에 있을 땐

종이에 쓰거나 가성으로 속삭이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했는데


전화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즘

갑작스런 감기는 공포스러웠다.


엄마도 이렇게 무서웠을까.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간 별로 타고나지도 않은 목을


일에 쓴답시고 혹사시킨 결과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현상인 것 같아


묘한 연민과 동질감이 들었다.



그만두는 건 언제나

나의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 없는,

가령 목소리 같은 건강상의 문제로


일을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예기치 못한 깨달음에


어떻게든 몸이 움직이고

빠듯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새삼스럽고

감사했다.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건

건강이 전제될 때로구나.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쉽게 꺼져버리는 목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역량 이상의 기능을 요구하다

더는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지금부터라도

몸을 좀 덜 혹사시킬 진로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현실적인 불안감이 파고들었다.


평생 일하고 싶다면

오히려 지금 나의 일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쉬어서 나오지 않는 목으로

회식자리에서 장단을 맞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공허했다.


목이 아프면

며칠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 아플 땐

하루쯤 침대 속에서 쉬어도 되는


인간적인 여유를 갖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결국, 답은 FIRE 인가...?


극중 파이어한다는 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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