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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Mar 27. 2024

은행원 생존일지 6.

위기의 얼굴


나는 화장한 얼굴보다

쌩얼이 더 예뻤다(과거형이다).


무슨 멍멍이 소리인고 하니


짙은 이목구비 때문에

왠만한 화장은 떠서 어울리지 않았기에

쌩얼이 차라리 나았다는 말이다.


화장해봐야 의미 없단 사실은

꾸밈을 대충 하며 살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고


그간 참 편하게 살아왔는데...



며칠 전 주말.


사라지지 않는 베개자국이 신경쓰여

간만에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거울 속엔


BB라도 바르지  않으면

병색이 그득한 도시인이 존재했다.


올라갔던 눈꼬리는 쳐지고

눈 밑 주름은 옆으로 더 퍼지고

피부는 칙칙한 동시에 물컹, 혹은 흐물?


오... 마이... 갓...


며칠 전 본 심리학 책에서

30대 초부터 노화가 시작되며

후반엔 middle age crisis가 나타난다던데


 얼굴이야말로 총체적 위기(crisis)였다.



아침에 아이 챙겨 나가기 바쁘고

종일 컴퓨터에 코 박고 일하기 바쁘고

퇴근하면 먹고 자기 바빴던 지난 몇 년이


고스란히 몸의 흔적으로 남았던 것이다.

(얼굴도 몸의 일부이니.)


개인의 재정적 고민을 들어 주고

법인의 경리3이 되어 일했던 날들 속에


게 늙고 싶다 생각했던 20대의 바람은

기억 저편의 신화로만 존재하는 현실.



아... 억울했다.


요즘 언론에서 노화가 10년 늦어졌다며.

그래, 연예인들은 젊기만 하던데.


후, 나는 화장도 잘 할줄 모르는데.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

어울리는 화장법 찾을 생각도 못했고


돈 아낀답시고 피부과를 가거나 

마사지 한 번 받을 생각은 절대 못했잖아.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천천히 늙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찾고 싶었다.


누구에게 잘보이려고가 아니라

그냥 여성으로써 나의 만족을 위해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뭘까 생각하다

운동으로 생기를 끌어 올리기로 했다.


마통만 영끌이냐! 생기도 영끌!

시술과 관리는 아껴둘거다.



그렇게 영원히 이용하지 않을 것 같던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 처음 간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사람들의 러닝머신은 분주했고


 그들을 보는 것 만으로

뭔가 해낸 것 마냥 엔돌핀이 돌았다.


작심삼일로도 오지 않던 헬스장에

노화를 유인으로 와 있다니 참 별일이지만.



회사 점심시간에

갑자기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부장님 동네 헬스장에는

새벽부터 연예인들이 운동중이란다.


지금 성수기인 연예인들 말고

한때 인기 많았던 옛 청춘스타들 말이다.


몸 관리를 요구받지도 않을 그들이

아직까지 전성기때처럼 운동을 하는 건


운동이 준 좋은 경험치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무너진 위기의 얼굴 덕분에

좋은 습관 하나 얻을 수 있다면


그래, 그렇게까지 억울해하진 말자.


대신, 이젠 나한테도 관심을 좀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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