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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Sep 08. 2020

서론과 결론은 만나야 한다

서론은 서울에 결론은 무인도에

      


대화 중 서론이 긴 사람이 있다.

서론이 손님을 태우고 서울에서 출발한다.

결론은 경상남도 남해의 어느 무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서울을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서울을 빙빙 돌고 돈다.

결론과 아무런 상관없는 자기 주변 이야기나 자랑이 주를 이룬다.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 언제 이야기가 끝날지 까마득하다.

아직도 결론이 무인도에서 서론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인도의 전설이다.   


네 사람이 술좌석에 앉아 대화를 이어간다.

서론이 긴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한다.  

무슨 사업 설명회에 참석한 기분이다.

저렇게 길게 이야기할 거면 미리 PPT로 자료를 메일로 보내 주면 될 텐데.

한편으로, 다음 술자리에 PPT를 준비해 오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생긴다.

지루하기도 해서 삼겹살을 굽고 가위로 자른다.

그랬더니, 자기 말에 집중을 안 한다고 주의를 받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주의를 받으니 화가 나서 장난기가 발동한다.

삼겹살을 이쑤시개 두께 정도로 잘라 상대방의 앞접시에 슬그머니 올려놓는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다 보니 오히려 당사자가 물어올 때가 있다.

“우리가 무슨 얘기 하다 여기까지 왔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고 넘어간다. 참 답답하다.

술과 자기 자랑에 취한 운전자가 목적지를 잊어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아무리 길어도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 섞인 대답은 안 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끝까지 참았다. 시간은 흐르고 돌아가면서 세 사람의 긴 이야기가 이어진다.

불판 위에 장시간 앉아 있는 삼겹살처럼 나의 인내력도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다.

언제 끼어들기 깜빡이를 넣을지 타이밍을 본다.

여간해서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려는 순간 두 대의 차가 접촉사고가 났다.

자기들끼리 서로 말이 많다고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세 사람인데, 30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래서인지, 서론이 긴 사람과의 대화는 경계심을 갖는다.

 경제적인 피해를 본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계심이 생겼다.

그 서론이 결론을 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설명이라면 들어준다.

경험상 꼭 필요한 서론은 그렇게 길지가 않더라.

결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론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유머도 없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한다.

거기다 딱딱한 말투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본론을 먼저 말하고 그에 대해 설명한다.

경험상, 이것도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니 상대방은 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론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뿐이다.

그 결론에 약간 반어법이 섞여 있었는데 그런 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소통과 이해의 부재와 오해로 역사는 수없는 전쟁을 겪었다.

인류는 외계인과의 소통을 위해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존재의 유무도 모르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 마음으로, 존재가 확실한 가족과 친구,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이해를 못 하겠는가.

좀 서툴고 장황하게 설명하더라도, 참고 들어주면 상대방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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