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글롯으로 거듭난 과정
내 삶의 키워드를 단 하나 뽑자면 '사랑'을 고르겠다. 내가 외국어를 배우고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하기 위해서니까.
친구들은 나의 영어와 중국어 실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너는 좋겠다. 일단 영어랑 중국어가 되니까 취업 잘되겠다." 칭찬을 들었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할테지만 나는 기분이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 취업하려고 외국어 공부하는거 아닌데?" 라고 말이다.
난 단 한 번도 취업을 위해서 외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기분 좋은 칭찬이지만 사실 난 재능이 있다기 보다는 외국어를 배우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공부할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평생 하고 싶다.
영어는 초등학교부터 필수교과과정에 있어서 시작한 공부이지만, 중국어는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공부한 첫 번째 외국어이다. 중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를 필히 일본어와 중국어 중 하나를 골라야 했지만 중국어가 어렵다는 말에 겁먹은 나는 자연스레 일본어를 골랐고, 별다른 감흥이 없어 학교 시험기간에만 살짝 본 정도였다.
그러다 외삼촌의 권유로 대학교에서 교양으로 중국어를 들었고, 그렇게 시작한 중국어는 재밌는 것도 재미 없는 것도 아닌 딱 '외국어'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하니 어느 수준으로만 공부를 했고, 다음 학기에 내 인생의 전환포인트라 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에 가게되면서 중국어에 대한 갈증과 배움의 욕구가 움트기 시작하였다.
말라야 대학교는 화교들뿐만 아니라 유학을 온 중국인들도 많이 있었다. 전에 배우는 표현들을 써먹어보고 싶어 그들과 자주 연락을 했고, 몇몇 중국 남자애들은 내게 호감을 표시했다. 그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행동과 나를 향한 애정어린 눈빛은 내가 중국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물론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마음이 더 잘 와닿을 수 있는 그들의 모국어로 상호간에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어느덧 중국과 중국어에 빠져버렸다.
모든 공부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으나 외국어, 특히 중국어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국인마냥 중국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최대한 그들의 문화를 느끼며 그들의 사고방식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오랜 역사, 사회 그리고 그들이 지닌 세계관이 중국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사랑'하려고 중국어를 배웠다. 나를 귀여워해주는 중국 친구들과 우정을 넘어서 어쩌면 연애 그리고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레이시아에 가기 전까지는 "연애, 결혼은 무조건 한국인이랑!" 이라는 어떻게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사랑에 대한 나의 관념과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고, 이 경험은 나를 정신적으로 한 층 더 고양시켜주었다.
말레이시아 교환학생 이후 중국에 꽂힌 나는 계획에도 없던 휴학을 하루만에 결정하고, 1학기는 한국에서 중국공자장학생을 준비하고 2학기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 아닌 중국이 주는 풍족한 용돈을 받으며 중국의 수업방식, 휴일과 방학땐 여행으로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아니 볼 수 없었던 더 큰 중국을 만나며 견문과 시야를 넓혔다.
사람들이 예전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여 그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나에겐 중국이 바로 그러한 존재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중국 노래를 들을 때면 중국 여행을 하며 만났던 중국 친구들과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길을 걸으면서 우연히 만난 강아지가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녀 사람들이 나를 주인으로 착각했던 귀여운 누렁이가 떠오른다.
오늘도 그 기억에 사무친 나는, 내 청춘이 어려있는 중국에 대한 글을 쓰며 추억을 곱씹으며 반추하는 시간으로 그리움을 작게나마 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