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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상 Aug 12. 2020

내 꿈이 직장인이 된 이유

어느새 나는 많던 꿈들을 하나둘 포기했다.

내 마지막 꿈은 ‘직장인이 되는 것’이고, 2019년에 입사했으니 벌써 그 꿈을 이룬지 2년차다. 그다음 꿈은 뭐냐고?

“ 꿈? 그런 건 이제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드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건 어떻게 만들었더라?


운동선수, 교사, 의사, 공무원, 요리사, 연예인, 유투버…..

작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초중고등학생 희망직업 상위권에 있는 직업들이다. 그 어디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직장인’은 없다. (정확하게는 모두 직장인이다. 직장인이란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니까) 10년 전에도 ‘직장인’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내 꿈은 직장인이 된 걸까. 누구나 그렇듯 나도 처음부터 꿈이 직장인은 아니었다. 다른 장래희망이 있었다. 너무 되고 싶은 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문제였다.


매년 새 학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학교에서 개인정보조사를 했다. ‘주소, 연락처, 취미, 특기’ 하나둘 기계적으로 칸을 채워가던 내 손이 멈추는 곳은 늘 장래희망란이었다. 그 칸만큼은 바로 쓸 수 없었다. 어떻게 만개가 넘는 직업들 중 하나를 쉽게 고를 수 있을까. 그 종이를 제출하기 전날, 나는 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밤을 보냈다. 그렇게 잠들기 직전에 겨우 채워 넣은 그 칸. 하지만 일어나서도, 학교에 가서도 그 칸은 지우고 써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제출 직전에 마지막 지우개질까지 마친 후, 너덜너덜하게 제출되곤 했다.


과학자, 고고학자, 시인, 교사, 약사…..

그래서인지 내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연관성 없는 직업들이 역동적으로 남아있다. 생활기록부를 보고 있으면, 12년 내내 공무원, 교사만 적어놓은 부모님 희망직업란과 대조되어 웃음이 나온다. (결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그 많은 직업 중 그 어떤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그냥 멋져 보이는 아무 직업이나 적은 거 아니냐고? 아니다. 다 내가 하고 싶었던 꿈꾸던 직업들이었다. 고민 끝에 적지 못했던 것들, 잠깐 스쳐 지나간 것들까지 합하면 내가 꿈꾸던 직업은 훨씬 더 많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았는지 잘 모르겠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내 생활기록부 속 직업들은 사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좋아했던 어린시절, 누구나 알만한 위인전부터 현존 인물의 자서전까지 섭렵했던 탓일까. 아니면 누구나 그렇듯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업적을 남기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한 사람이었지’라고 기억해주는 사람, 덕분에 세상이 변했다고 알아주는 그런 특별한 사람. 이런 꿈을 꾸는 내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부모님처럼 그저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꿈많고, 특별하고 싶었던 아이는 언젠가부터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 직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 어떤 재주도 없어서 시작한 공부는 여전히 어려웠다. 나이를 먹으면 익숙해질거라고 생각했던 인간관계도 이해관계가 더해져 점점 미로 속을 헤맸다.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했다.


이런 내게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라는 꿈은 과분하기만 했다. 청년 실업률 10%가 넘는 시대에, 그 꿈은 어디에서도 부끄럽지 않았다. 물론 가끔 부럽긴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던가 ‘획기적인 차세대 배터리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멋진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여전히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도전한다는 게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움뿐이었다. 평범한 것조차 힘든 내가 특별한 사람을 꿈꾼다는 것은 누구보다 많은 기회비용과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다.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겁쟁이 같은 꿈대로 나는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졸업한 지 6개월, 취준생활 1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끝에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마지막 꿈을 이뤘다. 꿈꾸던 대학에 합격했던 날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이제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회인이 되어버렸으니까. 장담하는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는 대로, 어쩌면 더 괴로운 시간들의 시작이었다. 대학입학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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