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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상 Aug 18. 2020

내가 이러려고 대학을 갔나

증발해버린 내 피, 땀, 눈물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더하겠다'라고 답한다. 나는 예외다. 물론 어디에서든 자랑할 만큼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때보다 더 열심히, 아니 그때만큼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없다.


내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나는 잘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몸으로 하는 것 중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다른 재주가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교우관계나 리더쉽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공부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신종변태인가 싶겠지만, 사실 공부가 재밌었다.(지금도 핸드폰 하나를 사더라도 cpu에 대해 공부하고, 뉴스에 나오는 법들을 찾아보는 걸 보면 여전히 공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세상의 원리와 내면가치를 알아가는 게 좋았고,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이 행복했다.



나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공부하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그래도 쉽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잘하는 재능'과 '좋아하는 흥미'는 다르지 않나. 남들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반복해도 외워지지 않아 내 머리를 수십번치기도 했고, 똑같은 문제를 10번씩 틀리기도 했다. 게다가 시험은 공부와 다르다. 반복과 훈련으로 체득하고, 실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긴장감과 안정적인 컨디션도 유지해야한다. 나는 그 모든 능력들, 심지어 찍기운조차 남들보다 부족했다. 모든 시험에 과도한 긴장감으로 임했고, 늘 실수투성이였다. 이런 나를 알기에, 그 부족함을 더 큰 노력으로 채우려고 애썼다.


그렇게 '죽도록'노력한 덕분에 꿈꾸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대학합격증을 받던 날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살면서 그렇게 후련한 날이 또 있을까. '합격'글자를 보는 순간 12년간 고생했던 시간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고, 드디어 그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상위권대학' 타이틀을 단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성공에 유리한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했다. 순진하게 어른들의 말을 믿은 것이다. 어른들은 늘 서울대,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문처럼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말은 어느새 직장만 잘 구하면 된다는 말로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학진학률 80%, 청년실업률 10%' 시대에 대학은 크게 의미없었다. 열심히 하면 보상받을 것이라 믿은 내 종교적 믿음이 깨진 것이다. 유리한 출발선대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8대 스펙(소위 학점, 어학연수, 학벌, 토익, 자격증, 수상경력, 봉사, 인턴경력)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위한 그 장애물조차 내게는 버거웠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넘어야 하는 장애물도 왜이리 많은 건지. 그렇게 나는 갖고 있던 꿈과 희망을 포기했다. 하나둘,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장애물들을 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는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다. 설마 어른들이 나를 두번이나 속였을까. 하지만 설마했던 일은 정말이 되어 나타났다. 취업이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새로운 성공조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집을 사야한다. 결혼을 해야한다 등등) 이미 한번 속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이상 놀랍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그보다는 허무했다. 내가 회사에서 맡게 된 업무는 해온 공부와 큰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전공이 중요한 엔지니어직군인 나도 그런데, 타 직군이면 더 심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노력들은 그저 사회에서 정해놓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이러려고 내가 그렇게 죽기살기로 공부했었나'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상관없는 일을 회사에서 하고 있을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잠깐일거라고 생각했던 이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잦아지고 많아졌다.

도대체 왜 나는 그렇게 죽기살기로 공부를 했던 걸까. 왜 그 장애물들을 넘기위해 애썼던 걸까. 빨리 가려고 애쓰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은 거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뭘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지?

늘 그렇듯 질문들만 머리속에 꼬리를 맴돌뿐, 답은 나오지 않는다.


벌써 8월 중순이다. 정신차리면 가을이 와있을 거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도 올거다. 그렇게 모든 계절이 지나고 나면 나는 벌써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만 2년, 차로는 3년차가 된다. 하지만 아직 내 질문들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평생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도 생각할 뿐이다.


'도대체 앞으로는 어떤 것에 내 열정을 쏟아야 하는 걸까. 아니 삶에 있어서 꼭 열정이 필요한가. 그냥 뛰지말고 걸어가도 되는 거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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