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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Jul 21. 2024

젓가락이 닮았다

엄마가 이사한 데를 오신다기에 버스와 지하철 타면 환승하는 거 불편하고, 시간 많이 걸리니 택시 타면 택시기사 바꿔달라고 했다.


기사님께 위치 설명, 30분 뒤에 엄마가 도착했다.

-집이 제법 너르네

-예전 집에 비하면 궁궐이지

-하이고~ 젊었을 땐 진짜 궁궐 같은 집에 살더니…

-에이~ 옛날 얘기는 반칙인데…

-미안

-밤에 조용하고 창문 열고 자면 안 더워. 아침에 새소리도 들려서 좋아

-뒷산이 가까봐서 그런갑다. 밥은 우째 묵노?

-아침은 볶음밥이나 끓여둔 국에 밥 먹고, 점심은 사 먹고, 저녁은 바나나랑 수박으로.

-배송이 힘든데 저녁을 그리 무가 되나?

-예전보다 신진대사도 느려지고, 밤에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그래도 뭐라도 꼭 챙겨 먹으니 걱정 마요.

-회사는 가깝나?

-버스 갈아타는 시간까지 해서 30분 정도. 다니기 편해요.

-아침은 뭇나?

-엄마랑 같이 물라꼬 안뭇지

-배고프겠다. 뭐 무꼬?

-이 동네에 밀면, (미국) 갈비탕, 횟집, 언양갈비 있던데

-날 더운데 밀면 무까?

-난 좋아


밀면집은 손님들로 북적북적,

-날이 더버서 손님이 많네

-그러게. 몇 번 왔는데 이리 손님 많은 건 처음이네

-여기 많이 맵더나?

-난 괜찮던데, 물밀면 시키고 양념 덜어내면 괜찮지 않을까?

-요샌 매운 거 먹으면 속이 많이 부대끼서 힘들어

-매운 건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대

-그래, 그렇다대

엄마가 젓가락을 꺼내더니 식탁 위가 아니라 수저통 뚜껑에 올려둔다.

-하하하~ 내가 엄마 닮았구나

-뭐가?

-나도 식탁 위에 수저 안 놓거든

-수저를 식탁에 그냥 놓는 게 싫더라. 친구들이 별나다 그래.

-나도! ㅎㅎ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교통부 외갓집 근처에 동네 사람들 가던 돼지국밥집 있는데, 인터넷(SNS, 맛집프로그램 등)에 알려지고 나서 줄을 쫙 서서 동네 사람들이 못 먹는 지경이 됐다기에,

-맛있어?

-그냥저냥 해. 초량오거리 돼지국밥집도 유명하다는데, 거기도 뭐 돼지국밥이지 다른기 없잖아

-그러게. 자기 입맛과 상관없이 유명하다면 찾아가서 사진 찍고 자기 다녀온 걸 자랑하잖아. 서울 아덜도 먹으러 와서 먹는 법도 붙여놓고 그래

-국밥이 먹는 법이 어딨노?

-정구지랑 새우젓 넣는 설명이던데, 돼지국밥도 그렇고 밀면도 서울엔 거의 없잖아

-그렇다며, 오늘 덕분에 과식했네

-여서 부산역이나 남포동 가는 버스는 어데서 타노?

-에이~ 왜요? 날도 더운데 택시 타고 가요

-택시 타면 우째 왔는지 길도 모르고, 혼자 찾아올 수도 없어

-다음에도 택시 타고 오면 되지

-그래도 내가 가는 길도 모르는 건 그래


결국, 버스를 타고 가셨다. 잘 도착했냐 전화드렸더니 잘 왔다며 피곤해서 낮잠 자야겠단다. ㅎㅎ 내일 모레면 80인 엄마는 몸의 편함 보다 자신이 가는 길을 모르는 마음의 불편을 싫어하신다. 넉넉한 삶의 태도를 닮고싶은 엄마, 불편하더라도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언제든, 자주, 오랫도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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