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리버 리 Aug 29. 2024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

택배 배송구역은 행정구역과 도로체계로 나눈다. 아파트는 한 군데 있으니 당연하고, 주택가 지번도 떨어져 있지만 대충은 몰려있긴 하다. 그래서 밀집도가 높은 지번일수록 배송 시간이 덜 걸리고 몸도 편하다. 택배족은 오늘 배송할 물량이 정해져 있으니 시간 걸리는 배송지를 싫어한다. 차량 진입 안되고, 계단 많은 주택가 지번은 몸 힘들고 시간 걸려서 싫고, 세제와 휴지 같은 부피 크고 무거운 물품을 한꺼번에 많이 시키는 고갱도 싫다. 또 하나는 그나마 지번에서 뚝 떨어져 혼자 있는 곳이다.


 #천마370 카페가 그렇다. 다른 배송구역에 들어가기도 애매한 위치인데 여기 한 곳 때문에  따로 와야 한다. 배송물품을 들고 가게에 들어서는데, 맞은편 통창 너머로 부산항과 영도가 쫙~ 산 중턱에 위치했으니 탁 트인 전망은 필수. 최고급 원두 사용한다고 입구에 적어뒀다. 하지만 택배족에겐 그저 성가신 배송지일 뿐이다.


휴무일 아침, 빨래는 진작에 끝냈고 한의원 예약시간은 남았는데 뭐 할까? 책을 읽으려는데 집이 점점 데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땐 시원한 데로 가야지. 그래서 왔다. 배송지를 휴무일에 오다니, 군바리들이 부대 쪽으론 오줌도 안 눈다는데 공사 구분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배알도 없는 50대다.


12:30, 아아 시키고 부산항과 영도가 눈앞에 펼쳐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이 들어오는데, 전원이 남자다. 아무리 어리게 잡아도 4~50대! 여기저기 제법 돌아다닌 편인데, 다방도 아니고 카페에 남자들만 득실대는 처음이네. 뭐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 안 그래도 한국 남자의 평균 성량보다 큰 족속들이 열을 내서 얘기 중이다. 부산에서 룸쌀롱, 단란주점 죽이는 데는 동래, 아니다 수영이지, 하단을 뭘로 보냐며 침 튀겨가며 논쟁 중이고, 어디 아파트는 대박 났고, 어디는 폭싹 망했다며 자신들이 살지 않는 아파트 가격으로 부동산 전망을 나누고, 자기 없으면 회사는 아무것도 못했을 거고, 자신이 회사를 먹여 살렸다, 지금 유명한 글마(부산아재들이 잘 쓰는 3인칭)는 그때 좆밥이었다는 자신의 화려했던 무용담과 영향력을 경쟁하듯 쏟아내는 중이다.


21세기임에도 아직도 여전한 대화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이거 선진국 문화잖아(푸하하~ 빵 먹고 콜라 마시는 것도 선진국 문화다)

-요새 도시락도 안 싸고 여자들 진짜 편해졌어(맨날 같은 멸치조림과 김치가 반찬이었던 시절로 돌아갈래?)

-여자도 싹 다 군대 보내야 해(군대를 없애거나 줄일 생각은 못하는 병장님들!)

-할 일 없으니 이런데 와서 커피 마시며 영양가 없는 수다 떨고 그러지(니나 잘하세요)


중년 남자끼리는 2명 이상 어울려 다니지 못하게 법으로 금해야 한다. 아휴~ 외로움이 습격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