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영화제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전 직장 동료들의 행사가 마무리된 시점이라 작년 대만 여행을 갔던 단톡방에,
-영화제 결산 끝날 땐데, 여행 가야지
-(한참 뜸을 들이더니)아이구~ 죽을 지경이에요
-왜?
-영화제가 코 앞이라
-올해는 안 하나 보던데, 홈피 업뎃도 안 됐고
-갑자기 하기로. 속초에서
-엥? 예산 때문에
-뭐, 그렇치요
-(하던 곳에서 해도 정신없을 텐데, 장소 옮겼으니 상황은 더 안 좋을 거라) 고생해라
어쩌다 보니 휴무와 대체휴무일이 3일 연달아 꽂혀고, 준비한다고 해도 첫날이 제일 정신없으니 속초 구경할 겸 거들 일 있냐니까, 와주면 고맙다기에 오도방 타고 속초 가볼까 싶어 검색했더니, 넉넉잡아 10시간은 걸린다. 어우~ 포기.
심야버스 23:30 출발, 다음날 05:00 도착, 아직 밤의 어둠이 남은 너무 이른 시간에 연락하기 그래서 목욕탕 검색, 낯선 도시에서 30분 이내면 걸어서 가는데 경험상 익숙해지는데 효과적이다. 수십 년 만에 찾은 목욕탕에 중장년의 남자들은 여전하다. 어느새 그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랜만에 온탕, 열탕을 드나들었더니 버스 5시간 이상은 무리인 나이라 그런지 몸이 풀리면서 노곤하다.
2019년 이후, 행사 현장은 근 5년 만인데 딱히 업무가 정해진 게 없으니(돕는 게 어려운 이유다) 처음엔 어색 뻘쭘했다. 현장 분위기와 동선이 파악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한번 익히면 오랜 시간을 안 했다가 다시 했을 때 예전 몸의 기억이 돌아오는 수영과 자전거 타기처럼 뭘 해야 할지, 어떤 걸 도와야 할 지 보인다. 배운 도둑질이 어디 가겠는가?
이틀간 행사를 같이 한 처음 만난 20대 동료들과 뒤풀이하고, 정작 오랜 친구들과는 술 한 잔 못한 채 카톡 작별인사만 나눴다. 세상 일이란게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게 대부분이다.
3일 차에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30 출발 버스가 몇 군데 들른 뒤 17:30 부산 노포동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집에 오자마자 18:55 #넷플릭스 #이토록_친밀한_배신자 보면서 편의점 샌드위치, 맛동산으로 끼니를 때운 속을 라면으로 깔끔 마무리.
1.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수 없어 낮은 뜨겁고, 파도소리만 들리는 해변의 밤은 추웠다.
2. 곰치국 유명하다기에 먹으려니 허~ 비싸도 너무 비싸서 순댓국 2번 먹었는데, 괜찮았다. 오징어순대가 동그랑땡처럼 나올 줄이야, 식감과 맛이 별로였다.
3. 부산에 사니 바다에 대한 기대는 없는데 병풍처럼 둘러 쳐진 설악산이 뒷배경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석호가 눈앞에 딱, 도시 규모가 너무 마음에 드는 속초, 다.
4. 영화제에서 감독, 배우가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을 모더레이터라 하는데, #고양이를_부탁해 정재은 감독, 오~ 엄청난 진행능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