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가장 추운 겨울에 만나, 함께 봄을 맞다

<나의 아저씨 (2018)> 리뷰

by 푸르른
BF.16721514.1.jpg


한줄평: 가장 추운 겨울에 만나 함께 봄을 맞이한다.


여러 곳에서 회자되었던 <나의 아저씨>를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자주 눈에 보였지만 왠지 모를 어두운 분위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며칠 전 자가격리 시작 날 넷플릭스를 돌리던 참에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2주 동안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보고 싶은 것 보자 라는 생각과 어떠한 장르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 같다. (+ 김원석 감독의 <시그널>, <미생> 박해영 작가의 <또! 오해영>은 여태껏 본 드라마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이었기에 <나의 아저씨>에도 왠지 모를 믿음이 갔다.)


처음엔 <미생>이 그랬듯 현실을 철저히 고증한 하이퍼 리얼리즘 같았다. 하지만 갈수록 이 세상에는 박동훈 부장 같은 인물이 과연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레이블, 수식어 붙이고 등급 나누기에 급급한 사회 속에서 사람 그대로, 과거와 배경이 어떻든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봐주고 이해해 주는 인물은 어찌 보면 판타지임과 동시에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양면성이 오묘하게 공존하며 생동감 있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는 동훈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뇌물 돈 5000만원의 유혹에 찰나 고민하기도 하는 현실의 무게에 허덕이는 대기업 부장이다.) 이런 입체적인 인물 묘사 덕분에 이야기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16화 내내 동훈이라는 인물을 응원할 수 있었다.




서로의 외로움

동훈과 지안은 사회적 위치도, 상황도 다르지만 (결은 다르더라도) 똑같은 깊은 외로움을 지녔다.

지안은 홀로 내동댕이 쳐진 인생을 살아내며 느끼는 외로움. 반대로 동운은 가족도, 20년 지기 후계동 모임 친구들이 있고 매일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하루의 끝을 맞이하지만, 똑같이 외롭다. 아무도 나의 힘듦과 감정들을 알아주지 않고,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외로움.


이런 둘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동훈은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모시고 빚을 갚아나가며 억척같이 살아나가는 지안의 “착함”과 고단한 삶을, 지안은 “성실한 무기징역수”같은 직장인의 삶과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견디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동훈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정말 힘들 땐 공감까지도 아니고 그냥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둘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파이팅”,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같은 담백하지만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며 서로의 삶을 이끌어준다.


극의 후반에서는 여태껏 수차례의 저녁식사 도중은 물론이고 평소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지안과 동훈은 맥주를 마시며 서로 마주 보면서 피식피식 웃는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손에 꼽자면 이 장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 동훈은 지안과의 잦은 저녁식사와는 달리 실제 가족인 부인과는 같이 식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동훈에게는 진정한 식구 (食口), 같이 밥 먹는 사람, 는 부인이 아니라 지안이다.

흔히 말하듯 정말 외로운 순간이 (하루 일과 끝나고) 혼밥, 혼자 식사하는 것이라면 이런 외로움을 피해 달아난 부인 윤희 대신 지안이 동훈에게, 동훈이 지안에게 서로의 저녁이자 식구가 되어준다.


Screen Shot 2021-04-25 at 2.44.55 PM.png


마지막 16화에선 드디어 동훈이 자신을 위해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아니, 우는 법을 배운다. 어찌 보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 중 하나인 우는 것도 배워야 한다. 자라면서 울음을 삼키고 화를 삭이는 방법을 체득하고 배웠기에 어른이 되어 이 모든 걸 un-learn 해야 하는지도.


그리고 결국 동훈과 지안은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에 만나 함께 봄을 맞이한다.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이름처럼 편안함에 이른 지안. 족쇄같이 여겨지던 직장에서 나와 성공적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한 동훈. 서로에게는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곁에서 같이 달려준 존재인 것 같다.


+) 지안과 동훈뿐 아니라 동훈의 형제 두 명도 각자의 기나긴 겨울에서 나와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4, 50대에 노모 집에 얹혀사는 둘이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엔딩이 정말 좋았다.




진정한 어른이란?


“괜찮아, 내가 먼저 볼게”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신을 보기 힘든 지안에게 한 이 대사가 동훈의 키다리 아저씨적인 면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보기 두렵고 마주하기 힘든 것이 기다릴 때 먼저 나서서 봐주겠다, 괜찮다 해주는 사람. 괜찮아, 고마워, 미안해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어른. 이 사회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 대 인간관계가 아닐까?


0eY5ooVmZzpdZGHQUszrDIWtch4.png

<나의 아저씨>는 사회제도의 변두리에서 홀로 갓 성인이 된 지안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집에 가기 위해 매번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지안을 대신해 장애가 있는 지안의 할머니 업고 계단을 올라가는 동훈은 말 그대로, 한편으론 은유적으로, 지안에게서 짐을 덜어준다. 이 장면같이 삶의 무게, 삶의 짐이 은유적으로 잘 표현된 부분도 없을 것 같다.

상속포기에 대해 아무도 말해준 어른이 없어 부모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고 요양 시설에 할머니를 무료로 모실 수 있는 제도도 모르고 힘겹게 혼자 할머니를 돌보는 지안. 사회적 제도에서 보호받아야 할 갓 성인이 된 지안에게 길을 인도해 줄 사람이 여태껏 동훈 외에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씁쓸한 현실의 단면이지 싶다.




후계동과 정 (情)


후계라는 동네를 보면서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동네들이 떠올랐다. 8-90년대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게 아닌 그냥 다 아는 동네. 서로 도와주고 든든한 백이 되어주는. 외부에서 보면 답답해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가족보다 더 강한 결속력과 정으로 똘똘 뭉친 사이. 무엇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닌 그냥. 당연히. 친구니까. 이웃이니까. 서로의 추억이니까.


5jUaSLZ3tF0NMkyeepxWZ-wqx0ZjPlZbFGMlaMYi7AJUlolnDTVdFuhVdDlwxJmibKRkb9brrSS7lTi2FV3F84EVKDY2iIS7qj6GKm6zBXFeNMqu0c3L6hI415rJhltZ8-phDUQpE_UYKausGHKjaeYQ3FuDz5uSbXm0nMRG4g8bdojriUsJjIezgtdzoHk9lFHn9Gp5EeOHn6IBYJJ_iVeZOaex95gvTTacoGT1cQCAs8xzAo8wlJRYZCT79S9i4CrnQrZ7kNSHyQtvOOIpJJ-5j2Q3d-MDqkuBViWoI4HFTxbwHZUrfA9boLAxFhr0ihjqn1y2UznLiwgXrBeMzULM2JJoqzlg2tXvfj-55fjQqyieQchJqCd2M2hbO3iU5XvvEAVZqqlqqw 지안의 집 근처에 사는 후계 동네 사람 문철용에게 지안을 살펴달라 부탁한다. 철용은 흔쾌히 '네'라고 함은 물론이고 나중에 별로 안면도 없는 지안의 짐도 맡아준다.


나에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는 이 후계동 정희네 모이는 사람들인 것 같다.


후계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은 다 인생의 피크를 찍고 내려온 사람들이다.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는 모습이 유치하고 한심하고 가벼운 사람들이라고 그려진다 (흔히 생각하는 진지하고 “성공한” 어른의 반대). 하지만 그들 특유의 따뜻함과 포용력, 도덕심, 인간성이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에서 빛난다.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대외적인 모습이 어떻든 이게 바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Screen Shot 2021-04-25 at 2.47.01 PM.png




<나의 아저씨>에 대해 느낀 점을 쓰라면 몇 시간이고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정주행 하고 싶다. 두 번째로 보면 안 보이던 부분들이 보이겠지?

때론 씁쓸하고 쓸쓸했지만 따뜻하게 마무리된 드라마라 깊은 여운이 남는다. 물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계속해서 생각나는 작품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느냐가 관건인 듯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