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자의 시선으로 본 <미나리> (2020)

by 푸르른

미국에서 1월 13일 Korean American Day를 맞아 <미나리>가 극장에서 개봉하기 전 먼저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봤다.


미국에서 12살부터 대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는 1.5 세대이다. 시대적 배경도, 1세대이자 2세대인 미나리의 주인공 가족의 정체성과도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잔잔한 여운이 남았던 <미나리>를 보고 느꼈던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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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구하려 했던 결혼 (marriage)가 점점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돈이, 돈 만이, 우리 가족을 구해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어가는 너무 현실적인 어느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


부부간의 커지는 의견 차이와 각자의 현실이 점점 멀어지며 결혼생활을 끝내려 할 때 불행에 감춰진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바로 부부를 도와주러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의 실수로 사업을 위해 쌓아 둔 농작물이 다 불에 타버리는 것이다. 농작물을 빼오기 위해 불길에 뛰어드는 부부지만 결국 타오르는 불길 사이에서 서로를 구하는 게 위태로운 결혼생활과 녹록지 않은 이민생활에서 서로를 구하는 그들 현실의 거울 같았다.


돈이 아닌 서로를 구하는 것. 가족을 구하는 것.


할머니 덕분에, 화재 덕분에 가족이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게 불에 타 버리지 않았다면 제이콥 (아빠)은 계속해서 아칸소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돈을 벌었을 것이고 모니카 (엄마)는 아칸소에서의 일상을 탈출해 캘리포니아로 떠나 가족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데이비드 (아들)이 심장병 문제로 고생하지만 할머니 순자는 오히려 "strong boy"라고 하며 더 강하고 활달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이렇게 comfort zone과 활동 신경/반경이 넓어진 데이비드가 결국 달릴 수 있게 되고 화재의 충격으로 자책하며 떠나가는 할머니를 향해 달려가며 가지 말라고, 같이 집에 가자고 돌려세우는 (어떻게 보면 구하는) 디테일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모든 걸 잃은 가족이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키우며 다시 한번 살아가는 엔딩도 잔잔하지만 희망적이어서 좋았다. 미국 작물로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는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마치 이 가족의 여태껏 고되었던 미국에서의 생활과 앞으로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함께 본 엄마가 "이건 이민자들의 이야기니까..." 우리와는 다른 이야기라고 하실 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 Korean-American narrative 에도 끼지 못하는구나.

Korean 도 아니고 완전한 Korean-American (2세)도 아닌 그 어딘가.

나는 부모님이 빈털터리로 미국에 오시지는 않았지만 나와 가족의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감히 이주하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시며 타지에서 고생하셨다. 꼭 보편적인 이 두 주류의 커뮤니티에, 내러티브에,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나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으니까...라고 위안을 삼는다.


어찌 되었든 부모가 자식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희생하는 것은 이민자든 아니든, 그 중간 어디든, 만국 공통한 universal 한 사실이자 이야기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 special interview에서 한예리 배우가 말했다. 그녀 자신이 극 중 모니카와 같이 미국으로 이민 가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예상치 못하게 낯선 땅의 트레일러 집에서 살게 된 것 같이 한국에서 한예리 배우의 부모님도 계속 trial and error를 통해 모험하셨다고. 어느 부모가 그렇듯.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자체가 universal 하고 이민자든 아니든 모든 정체성을 뛰어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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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4월 25일)

왠지 윤여정 배우님이 시상을 하실 것 같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 배우가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로 수상하는 것의 시사성 때문이기도 하다. 2021년 4월 미국 사회 전체에 퍼지고 있는 아시안 혐오와 폭력 사건들에 맞서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님이 수상할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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