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중독성
우울증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불안과 우울, 무기력은 지병이다. 당뇨처럼 수시로 올라오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민간요법과 약물치료로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완치란 없다고 생각한다.
신체적 지병과 정신적 지병의 차이점이 있는데, 신체적인 지병은 누구나 나아지려 하지만 정신적인 지병에는 달콤 쌉싸름한 중독성이 있어서 낫기 싫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른 병원은 살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가지만 정신과는 대부분 죽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간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성을 가지고 있어서 과도한 기쁨이나 슬픔, 흥분, 분노 등을 조절해주기도 하지만 우울증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과거 우울증을 앓았을 때의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하고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우울은 우리를 심해로 끌고 들어간다. 밝은 지상과 멀어져 빛도 들지 않고 일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해류도 느껴지지 않고 주변 물고기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시간 감각도 사라져 해가 뜨고 지는지도 모른다. 굉장히 고요하다. 수압은 점점 강해져 움직이기 힘들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까지 내려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점점 가라앉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수면까지 올라가려면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심해에 가만히 몸을 맡기는 것을 나는 우울의 중독성, 알면서 자신을 방치하거나 해치는 길티 플레저 또는 배덕감이라 생각한다. 갖은 노력으로 벗어난 후에도 우울은 틈만 나면 수시로 우리를 끌어내린다. 계속된 애프터케어를 스스로 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두 가지를 적절히 혼용하며 살아간다.
첫 번째는 무기력을 쫓는 방법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적절히 나누어서 하는 것인데, 계획을 세워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당장 시작한다. 활력을 가져다주고 생각을 줄여준다. 하지만 지나치면 스스로에게 강박과 스트레스를 준다.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정말로 무기력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두 가지를 한다. 내 몸을 씻는 것과 내 방을 청소하는 것.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성공률 100%다. 세상에 이만큼 성공률이 높은 일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를 과도하게 사용했을 때 사용한다. 불안함을 진정시켜준다. 나 자신의 언니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게 군다. 내가 세운 계획을 도저히 못 지킬 것 같고, 나이는 이만큼 먹었는데 가진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온다.
자신을 스스로 잘 돌봐주어야 한다. 피곤하고 예민하면 맛있는 것을 먹여서 한숨 푹 재워야 하고, 가끔 좋은 것도 사주고, 좋아하는 곳에도 데리고 가줘야 한다. 부모님들이 아이가 태어날 때 '건강만 해다오'라는 마음으로 키우지 않는가. 내가 나의 언니가 되어서 보면 남들보다 잘나지 않아도 괜찮고, 아프면 쉬었으면 좋겠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누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면 대신 화도 내준다. 너그러워진다.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모르겠을 때 생각해낸 방법이다. 그럭저럭 먹히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 방법으로 애프터케어를 하며 살아간다. 행복할 때는 우울증을 경험했기에 지금 더 행복함을 알고 감사하고, 순간순간 햇살과 바람에도 행복해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우울할 때는 과거 겪었던 감정들이 슬쩍 올라온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양치를 하는 것도 힘들고, 벗은 옷을 제자리에 두는 것도 못할 것 같다.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움직인다. 하는 순간 그건 이미 한 일이 되어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런 날은 잘 먹이고 일찍 재운다. 계획대로 못한다면, 그건 애초에 나한테 무리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은 컨디션이 조금 괜찮아져 있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아지면 기분도 좋아진다. 일주일 중 닷새의 컨디션과 기분이 괜찮으면 그 상태가 정상으로 인식되며 우울로 끌어당기던 기분의 항상성이 점차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나의 마음을 돌봐줄 사람은 나뿐이다. 잘 지내기,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게 다가 아닐까. 잘 지내자.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