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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Aug 17. 2021

미니멀 라이프의 위기

이상과 현실 사이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나의 방은 얼마 전까지 간결했다.

사진의 빈 책상과 스탠드 조명, 작은 철제 서랍 1개, 타워형 책선반 1개, 싱글 옷장 1개, 수납 침대가 가구의 전부였고 모든 소지품이 여유 있게 수납되었다. 더 필요한 물건도, 더 비워야 할 물건도 없이 균형을 이룬 상태여서 정리와 청소에 품도 거의 들지 않았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한 달 전까지의 책상

나의 신조는 '물건 수납을 위한 물건을 사지 않는다' 였으나, 최근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로 몇 년 만에 수납용품을 구매했다. 작은 3단 투명 서랍이다. 너무 자질구레해서 일반 서랍에 정리하기 어려운 것들을 담았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이제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가 힘들다. 경험에 돈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소유물을 사려면 생각이 많아진다. 미니멀 라이프가 오래되자 소유를 위한 소비가 힘들어졌다.

1. 이걸 어디다 둘까 (가장 큰 문제)

2. 잘 쓸까, 오래 쓸 수 있을까, 꼭 필요한 물건인가

3. 사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4. 나중에 어떻게 비우나, 친환경적인 소재인가

급해서 아무거나 사게 되는 경우를 조심하기도 하고, 정말 사아하는지 보려고 기다려보기도 하고, 있는 물건으로 대체해서 지내본다. 그 뒤에 신중하게 고민해서 소비한다.


 최근 창업 준비를 하며 방 한편의 책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미싱을 사고, 관련 서적을 사고, 각종 재료와 장비들을 사고, 타사 샘플들을 사서 뜯어보고, 연습작들이 쌓여간다. 원단과 실 조각들, 끈에서 나온 먼지들이 책상을 뒤덮고 공중에 흩날리고 바닥을 창고처럼 만든다. 장비병은 없는데 배우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구매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고, 쌓아놓고,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첫 번째 문제로, 계속된 소비와 소유물의 증가, 물건의 낭비가 미니멀리스트의 멱살을 잡고 어지럽게 흔들고 있다.


 아래 사진이 현재의 책상이다. 수차례 배치를 바꾼 후 정리를 해도 이렇다. 책장도 거실로 치웠다. 내가 유난인가, 깔끔을 떠는 건가 싶기도 하다.

현재의 책상. 오른쪽은 최근에 산 수납서랍.

 공예는 원래 준비물이 많고 부산스러운 것이지만, 두 번째 문제는 작업공간의 반대편에 침대가 있다. 3평의 공간에서 재봉을 하고, 노트북을 하고, 책도 읽고, 잠도 잔다. 수면 공간과 작업 공간의 분리가 안 된다. 언제부턴가 거실에 나가서 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작고 귀여운 자본금으로 작업실을 마련할 수도 없고, 거실에서 일하기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수면의 질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당장은 해결방법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는 궁극의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친환경적인 제품들과 최소한의 가구, 몇 벌의 옷, 몇 권의 책과 함께 텅 빈 방에서 생활하는 나를 꿈꿨다. 현실은 실밥들이 침대와 바닥에 붙어있고 책상은 미싱과 노트북, 커팅 매트, 샘플들로 책 하나 둘 자리조차 없다. 책상을 하나 더 두고 싶어서 울고 싶을 정도다.


 미니멀 라이프의 현실과 이상이 청경재와 초콜릿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에 괴로워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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