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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Aug 11. 2023

대표는 1등보다 먼저 하는 사람이다.

뭔가 되려고 하기보다 뭐든 해야 하기 위한 존재  

"야 너는 회사 대표 하면 진짜 잘하겠다" 친한 친구들은 이런 말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앞장서서 궂은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다. 내 주변은 그랬다. 



바이오벤처를 10년 만에 상장시킨 오랜 선배 대표를 찾아갔다. 첫마디가

" 그냥 월급 받고 살아~ 나오는 순간 종이 한 장도 돈 주고 사야 돼"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났다. 그러나,  



" 난 저 앞에 보이는 삼성건물 꼭 사고 말 거야" 웃고 넘길 만할 당연한 농담에 나는 진심을 읽었다. 그녀는 진지했다. 나와의 대화 중에 오늘 제일 진지했다. 



가슴을 뛰게 만든 그녀의 의지와 열정, 살아있었다. 말 한마디마다 자신이 아닌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말투와 배려.. 그녀는 자신의 본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대표가 아니라 대표를 하고 있었다. 회사를 대신해서 말이다.  



나와 가장 최측근 두 명.. 우린 이렇게 3명의 이사로 구성된 연구개발 전문 기업이다.  시작은 나 말고는 대표를 할 상황이 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대표를 하기로 했다. 심지어 시작은 1인 법인으로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누가 말 안 해도 아는 사실이 있었다. 우린 돈이 없었다. 내 적금 통장을 깨서 자본금을 만들었고, 월급은 커녕 시약재료 하나도 덜덜 떨며 결국 빌려 쓰기 일쑤였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이러다 딱 정해진 시간에 자본금이 바닥나서 접거나, 그전에 흔히 말하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투자는 지금은 아니다, 그건 가장 마지막이어야 했다. 우린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빚도 능력이고 투자도 능력이다. 가진 것 만으로 무턱대고 남의 돈 가져다 연구할 배포도, 자신도 없었다. 아직 우리 기술이 사업화가 가능한지 검증받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 기술을 자문해 주는 기관의 소개로 정부사업화 과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빛이 보였다. 나는 뭐든 해야 한다. 기회조차 보이지 않던 지금,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최소한 뭐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목숨과도 같다. 



1. 무조건 한다-제안서를 보기 전이었다. 
2. 아.. 할 수 있을까? 하나도 아는 용어가 없다.-제안서를 보았다.
3. 어차피 해도 안될 거 뻔하다-선정될 가능성이 없다. 아니 뭔 말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내가 해 온 연구로 사업화를 해보라는데, 왜 이걸 쓰지를 못하는지 나도 답답했다. 그동안 난 도대체 왜 연구를 한 건지.. 어디다 갖다 쓸려고 한 건지.. 생각의 틀을 바꿔야 했다. 왜 필요한 걸까? 누구에게 필요한 걸까? 경쟁력은 있나? 기술성은? 사업성은? 사업화전략은?



매일같이 자문기관의 부장님을 찾아가 점심시간을 내어 같이 식사를 하며 도움을 받았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매출계획 잡는 법부터 배웠다. 난 숫자에 너무 약한 인간이다. 내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일단 내가 먼저 다 배워야 했다. 진심으로 다가갔다.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익히고.



한 달 꼬박 제안서만 작성했다. 1주에 한 번씩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다시 작성하고.. 나는 일주일 내내 써서 보내는데,  피드백은 몇 시간 만에 왔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빨간펜 투성이에.. 일주일 남짓.. 마감이 남았을 때쯤.. 또 한 번 현실에 직면했다. 선정되지 않을 게 뻔한데, 지금 내가 여기에 전력투구 한는게 맞는 건가..



제출서류만 14가지 종류였다. 이것들 정리하고 여기저기 웹사이트 가서 다운로드하고, 다시 수정하고,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 업로드하고 최종 제출을 완료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오롯이 혼자 달려온 지난 한 달간의 나를 나는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했다. 정말 대견했다. 아직 열정이 남아있음을 알았고, 내가 왜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 왜 우리 기술이 정말 좋은지 더 뾰쪽하게 알게 되었다. 감사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선정될 리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 이렇게 다시 간절하게 뭔가를 배우려 하고 한 자 한 자 정성으로 써 내려가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거렸다. 아직 해볼 만하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나는 큰 성과를 이미 얻었다. 나도 제출이 불가능할 거라 확신하며 그렇게 한 달을 매달렸다. 40넘은 나이에 2세를 가져보겠다며 퇴사부터 했던 그 무모함 보다, 나는 더 먼저 나서서 뭐든 해야 한다. 대표는 뭐든 해야 하는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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